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벨벳 재킷과 검은 실크 스타킹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기치로 삼는 유미주의의 사도를 자처하며 사교계의 총아로 이름을 날렸다. 옥스퍼드 대학교 시절에 발표한 시 「라벤나」(1878)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받고, 시집과 희곡을 집필했다. 1882년, 일 년 동안 미국을 순회하며 자신의 미학을 설파했고, 동화집 『행복한 왕자』(1888)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90년에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월간 리핀콧≫에 게재하며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듬해 ‘동성애적 암시’를 대폭 걷어 낸 다음 새로이 단행본으로 펴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예술은 정말이지 쓸모없다.”라고 선언하며 끝까지 자신의 문학과 예술을 옹호했다. 1891년, 단편집 『아서 새빌 경의 범죄』와 『석류나무 집』을 출간하고, 1892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1894년 또 다른 문제작 「살로메」, 1895년 「이상적인 남편」과 「진지함의 중요성」 등 여러 희곡 작품을 연달아 무대에 올리며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때 동성애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파산과 함께 명성을 잃었고,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은 뒤 수감됐다. 출소 후에 시집 『레딩 감옥의 노래』(1898)를 자신의 수인 번호로 발표했고, 교도소에서 쓴 『심연으로부터』(1905)는 사후에 출간됐다. 그 뒤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떠돌다가 1900년 11월 30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