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초판발행 2024.04.30
머 리 말
21세기에 들어선 후 4차 산업혁명의 진전, 디지털 정보전환(Digital Transformation), 기후변화, 사회적 가치 확산 등 공공조달 시장을 둘러싼 대내외 정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국내조달 시장규모는 약 200조 원을 돌파하여 GDP의 10% 수준에 달하고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는 57만여 개에 이르는 등 공공조달 관련 법과 제도의 중요성은 점점 더해가고 있다. 또한 미국·EU 등 OECD 국가들도 공공조달의 막대한 구매력과 혁신성에 주목하고 벤처기업 판로지원 등 산업정책과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필자도 조달청장 재임 당시 이러한 국내외적 환경 변화를 직시하고 공공조달의 역할이 절차와 규정을 중시하는 ‘소극적 계약’, 즉 전통적 조달 역할에서 약 200조 원에 달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 구매력을 활용하여 벤처기업·환경·노동·사회적 가치 등 국가의 다양한 정책을 지원하는 ‘적극적·전략적 조달’로 패러다임 대전환(paradigm shift)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실제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 등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조달(Innovative Procurement)’을 도입·적극 추진한 바 있다.
이러한 공공조달의 역할과 기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바로 공공조달법이다. 다만, 공공조달법은 단일법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등 공공조달 관련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수많은 개별 법령의 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국가는 이러한 개별 법령에 근거해 각종 조달제도를 규율하는 한편, 일방 당사자로서 거대한 시장을 운용한다. 한편, 공공조달법은 공법(公法)과 사법(私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특수성을 가지므로, 조달실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민법 등 사법(私法)과의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공공계약 등 조달행정은 주로 사법(私法)상 계약의 성격을 지니지만 불공정 조달행위 조사·입찰참가자격제한·과징금·거래정지 등 공법(公法)상 행위도 다수 포함하며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달행정 주체는 사경제(私經濟) 주체로서 지위와 공권력 주체로서 지위를 모두 갖는다고 이해해야 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많은 공공조달법 서적은 조달행정을 사법적 형식에 한정하고 조달행정기관을 사경제 활동 주체로만 기술하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조달청장 재직 당시 이러한 조달행정의 법적 인식과 지위에 많은 아쉬움을 느꼈고, 공공계약론을 중심으로 공공조달법을 살펴보되 아울러 공법상 행위로서 성질을 가지는 특수한 공공조달 영역까지도 확대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기술하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조달청장 퇴임 후 한동안 이러한 고민을 잊고 있다가 이러한 문제 인식에 생각을 같이하는 조달청, 방위사업청 등 정부기관과 국회, 법원, 대형로펌, 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조달 행정실무와 법률해석의 풍부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실제로 조달업무를 한 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공공조달법 기본서’를 집필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조달법의 틀을 설정한 다음 여러 쟁점을 잘 아우르고 집약하여, 한 권의 책에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즉, 단순히 규정을 소개하고 판례를 나열하는 정도만으로는 이 책의 독자에게 수시로 변동하는 조달규제와 정책의 동선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이에 개별 법령 등에 산재한 각종 조달제도를 정리된 이론체계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면, 단순히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등 개별법 조항을 해설하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민법, 상법, 행정법 등 기본법과의 관계에서 공공조달법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조망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이 분야의 선행 연구결과와 문헌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공저자들이 목표했던 자료 정리와 집필 작업이 쉽지 않았고, 특히 현업 중에 틈틈이 연구하여 글을 써 나가는 일 역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2년여 만에 탈고(脫稿)했고, 이를 ‘공공조달법의 이론과 실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으려 한다.
공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며 특히 염두에 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조달법 등에 있는 개별 조문의 해석에만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서 공공조달법은 물론 민법과 행정법 등 기본법의 이론과 판례도 함께 소개하고, 그와 관계에서 공공조달법의 개별 조문이 어떻게 해석·적용되는지를 이론과 실무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이는 법률지식이 다소 부족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실무자라도 이 책 한 권으로 기본법적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공공조달법을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둘째, 조달행위의 법적 성질, 절차규정을 나열하는 개론 수준을 넘어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등에 기초한 조달제도를 자세히 소개하고 공공조달의 실효성확보수단과 분쟁해결수단을 별도 주제로 다루는 등 새로운 체계 아래에서 공공조달법을 해설했다. 즉, 제1편은 공공조달법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 이론적 배경, 제2편은 공공조달법의 핵심인 공공계약법 이론과 실무, 제3편은 조달사업법 등에 근거한 조달유형, 제4편은 입찰참가자격제한 등 공공조달에서의 공권력 작용과 실효성확보수단, 제5편은 공공조달 분쟁유형과 해결 수단을 다루었다.
셋째, 공공조달법의 근간인 주요 법령은 물론 이른바 ‘실무자의 법’이라 일컫는 예규, 고시, 공고, 훈령, 지침 등 내부사무처리규정까지 소개하고자 했다. 내부사무처리규정은 공공조달 계약관계에서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계약내용으로 편입되면 구속력을 갖는 등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공공조달법 체계 아래에서 이러한 규정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중점을 두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쟁점별로 중요한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는 되도록 많이 소개하고자 했고, 하급심 판결 중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내용은 함께 다루었다. 흔히 판례는 추상적인 법률이나 이론을 구체적 사실에 적용한 결론으로서, 현실과 실무를 반영하기 때문에 구체화(具體化)된 법이라고 부른다. 이는 공공조달법 분야에서도 예외일 수 없고, 때로는 판례가 제도개선을 유도하거나 실무방향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의미 있는 판결례는 계속 추가해 나가겠다.
공저자는 행정실무가뿐만 아니라 기업, 법조인, 연구자, 학생 등에게도 공공조달을 널리 알리고,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물론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고, 부족한 부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년 가까이 논의를 거듭하여 다듬어 온 글이지만, 그 과정에서조차 거르지 못한 오류도 있을 것이다. 부디 독자들께 냉정한 질책과 비판을 구하며, 아울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이 책의 원고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분의 역할이 컸다. 원고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공공조달법 적용관련 이론과 실무, 판례 등에 대해 많은 조언과 큰 도움을 주신 조달청 선후배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집필여부를 고민할 때 큰 용기와 격려를 해주신 고려대학교 미래성장연구원 김동수 원장(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이 책의 출간을 기꺼이 허락한 박영사와 번거로운 교정작업을 맡아 준 김선민 편집이사 등 관계자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오랜 집필기간 동안 공저자를 응원하고 지지해 준 가족들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다.
2024. 4
공저자를 대표하여 안암동에서
정무경 전 조달청장
추 천 사
좋은 책이 한권 출간되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꽃망울을 터트리는 화사한 봄꽃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열반경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불교 우화이다. 코끼리의 일부 부위만을 만져본 여러 사람들은 제각각 본인이 만져본 부위에 따라 코끼리에 대해 어떤 사람은 큰 무 뿌리와 같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바위, 어떤 사람은 나무절구, 어떤 사람은 평상과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각자는 코끼리를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각자의 부분적인 이해만으로는 코끼리에 대한 설명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공공조달이 딱 그렇다. 각자의 머릿속에 어렴풋한 잔상은 있으나 전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조감도가 부재하다. 관련 내용들이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조달사업법, 전자조달법 등으로 나뉘어 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제도·정책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조달의 내용들은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일반인들이 다가서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공공조달은 중요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서비스(용역)와 공공시설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원자재를 비축하기도 한다. 또한 조달 규모가 연간 GDP의 10%에 육박하는 200조원을 넘어섰으며, 57만 개의 조달기업과 7만 개의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신성장산업 육성, 기후변화대응, 공급망 안정 등을 위한 전략적인 정책수단으로서의 공공조달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우리나라도 「중소·벤처·혁신 기업의 벗」이라는 기치 아래 공공조달시장을 활용한 혁신 벤처생태계 육성과 범정부 협업을 통한 글로벌 유니콘 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공조달의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그 전략적 가치도 높아지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공공조달 법규정과 제도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에 출간된 「공공조달법의 이론과 실무」가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법에 산재해 있는 공공조달관련 규정들을 공공계약-공공조달의 실효성 확보-공공조달 분쟁해결이라는 전반적인 계약절차의 큰 흐름에 따라 정리하고, 혁신제품-우수조달제품-비축-나라장터 등 공공조달 플랫폼 등 각종 조달관련 제도를 망라하고 있는 점이다.
이 책이 이론과 실무에 두루 도움이 될 수 있는 양수겸장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먼저, 공공조달 관련법의 법적이론, 해석론, 판례 등을 빠짐없이 수록하였고, 사법상의 법률행위 관점과 공법상의 법률행위 관점을 균형 있게 서술하였다. 민법·행정법 등 기본법의 배경이론 소개는 덤이다. 또한, 이 책은 다년간 이 분야에 종사하고 법적분쟁을 실제로 다룬 전문가들의 역작이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하위 규정이나 세부지침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의 상세한 내용까지 기술하였고, 생생한 사례와 판례도 수록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공공조달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조달기업, 정부·지자체·공공기관 관계자분들에게는 공공조달 과정에서 부딪히는 각종 상황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과 대응책을 찾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 4
제39대 조달청장 임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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