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초판발행 2024.01.1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9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무역량의 80%가 국제표준 영향 아래서 유통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22년, 미국표준협회는 표준과 기술 규제가 세계무역의 93%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영국표준협회는 2015년의 보고서를 통해 표준의 GDP 성장률 기여도가 약 28.4%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 국제표준의 부합화는 업무 효율을 높이고 시장을 개방하며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비용 절감 효과를 충족한다.
1961년 「산업표준화법」 제정과 함께 국가표준제도를 시행해온 남한은 2022년 기준 누적 신규 국제표준 제안 건수 1,234종, ISO 회원 평가 8위, ISO와 IEC의장 간사 등 임원 250명으로 표준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남한은 2010년 IEC 정보통신 산업 분야 국제표준 제안 1위, 2021년에 세계 3대 국제표준화기구 선언 표준특허 누적 건수 부문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남한의 국제표준 부합률은 98.8%에 달한다.
반면 북한은 1950년 국제단위계를 도입하고 남한과 같은 시기인 1963년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표준화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국제표준 부합률은 2015년 재발행된 국가규격 목록 기준 8.6%에 그친다. 북한은 1997년 「규격법」을 제정하여 산업 전반에 규격 보급 사업을 강화하고 규격화 사업을 통해 제품의 질 제고에 힘쓰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제 품질 수준은 당국의 발표에 미치지 못한다. 국제표준화 활동에 있어서는 IEC 정회원 자격 상실과 준회원 자격 재가입, 유라시아국가계량기구연합(COOMET) 장기 미활동에 따른 회원자격 박탈 등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부진한 활동을 보였다.
독일연방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독일의 통일비용 추계는 2조 4,550유로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10%가 표준통일 비용으로 소요되었다. 분단 시기 표준화 협력을 추진하였던 동서독 표준통일 비용의 규모로 분단 78년간 표준 · 규격화 협력이 없다시피 한 남북한의 표준통일 비용을 추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 추진 사업의 목적이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 전 남북 간 표준화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 후 사회통합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사회 안정화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도 남북한 표준화 통합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사회 통합의 초석이 될 남북 간 표준화 협력은 체제와 문화, 사상의 이질화가 심화한 남북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통일에 대한 체념과 불안감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은 공통된 표준 적용으로 모든 산업 기반 시설, SOC 등이 통일된 유일한 표준화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며 사용자인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인 표준화 통합을 위하여 한국표준협회를 중심으로 정부, 산업계 · 학계 · 연구계의 표준화 전문가 그룹을 구성원으로 거버넌스를 조직해 남북한 표준화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의 초기 단계에서 통일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 국제기구가 협력하여 남북한 표준체계 비교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여 연구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 정부와 국회는 법적 ·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통합 추진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경제통일 교육도 확대 실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남북 간 교류 협력 단계에서는 북한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동반자지원(Fellowship)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해 북한 규격의 국제표준화 부합률 상승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국제표준화 활동 의지가 높아지고 남북한 표준화 협력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국가기술표준원의 개발도상국 표준체계 보급 지원, 관련 협회의 단계별 맞춤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표준화 현황을 분석하여 북한 맞춤형 표준화 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
통일에 있어 표준화 통합의 비중과 가치를 생각하면 남한의 북한 표준화 지원은 소모가 아닌 중장기 투자이며 협력을 통한 상호 발전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남북 간 표준 · 규격화가 조금씩 이질화되어 고착 단계에 이른 것처럼 통합에도 전략 수립에서부터 세부 계획 추진, 변수의 대응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지금 바로 남북한이 표준 · 규격화 교류 협력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본서는 남북한의 표준 · 규격화 통합방안을 도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총 8개의 장으로 구성한다. 제1장 서론에서는 본 연구의 목적과 필요성을 밝히고 선행연구를 검토하며 연구 방법을 제시한다. 제2장에서는 제1절에 표준의 태동과 표준화의 발전, 표준의 기능과 역할, 표준화의 기본원칙 등 표준화 개요를 소개하고 제2절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의 역할과 남북한의 국제표준화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서술한다. 제3절에서는 남한의 국가표준(KS) 및 북한의 국가규격(KPS) 현황과 남북한 표준 · 규격화 운용 체계를 기술한다.
제3장에서는 김일성 시대 표준 · 규격화 정책 기조를 조사하여 분석한다. 제1절에서는 먼저 북한 표준 · 규격화 정책의 기원이 된 한국전쟁 후 국가재건사업 시기 해당 정책 기조를 분석한다. 이어 경제 발전 전략 원형 완성의 기반이 된 김일성 시대 규격화 사업의 특징을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경제체계 확립 주력 시기 농업 및 건설 분야 규격화 사업의 본질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제2절에서는 김일성 시대 표준 · 규격화 정책의 함의를 고찰한다.
제4장에서는 김정일 시대 표준 · 규격화 정책 기조를 고찰한다. 제1절에서는 먼저 해당 시기 「규격법」 및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품질 개선 사업을 추진한 배경과 내용을 조사하고 이어 규격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북한의 규격화 사업 체계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국제표준화 활성화를 위한 당국의 활동을 추적한다. 제2절에서는 김정일 시대 표준 · 규격화 정책의 함의를 기술한다.
제5장에서는 김정은 집권기 자립경제체제 공고화를 목표로 한 경영활동의 과학화 · 정보화 · 현대화 강화 기조 아래 추진되는 규격화 사업의 특징과 영향력을 분석한다. 제1절에서는 품질 제고 사업의 배경과 기업책임관리제 시행에 따른 기업소 규격화 사업 강화 현황과 품질인증제도에 관하여 기술한다. 제2절에서는 표준 · 규격화의 대상이 확대된 분야 가운데 ICT, 안전관리 규격화, 환경관리 체계 인증 부문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제3절에서는 규격화 정보 서비스 체계 발전과 연구 강화 정책에 따른 국가규격 목록 재발행, 규격화 정보 체계의 발전과 표준 · 규격화 연구 강화 현황을 분석한다. 제4절에서는 규격화 교육 강화 정책에 따라 해당 분야 전문 인력으로 성장한 근로자들이 산업현장에서 기술 개발에 참여하여 사업 성과를 제고하는 규격화 사업 운영 메커니즘을 연구한다. 제5절에서는 KPS의 국제표준 및 KS 부합률을 분석하고 북한 국제표준화 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조명한다.
제6장에서는 독일과 유럽연합의 표준화 통합사례를 조사하고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 적용에의 시사점을 고찰한다. 제1절에서는 분단 기간에도 표준화 교류 활동을 하여 통일 과정에서 표준화 통합의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었던 독일의 표준화 통합사례를 고찰한다. 2절에서는 경제협력을 위해 표준화 통합을 전략적으로 추진한 유럽연합의 사례를 분석한다. 제3절에서는 독일과 유럽연합의 사례가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에 주는 시사점을 요약한다.
제7장에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규격화 체계를 남한의 표준화 운영 시스템으로 흡수 통합하는 단계적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방안을 제시한다. 제1절에서는 남북한 표준 · 규격화 이질화 현황을 제시하고 협력 경과 조명을 통해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의 우선순위와 추진 방안을 모색한다. 제2절에서는 남북한 표준화 통합 전 교류협력 단계에서 필요한 통합 추진 거버넌스의 조직과 단계별 진행 방안을 제시하였다. 남북한 국가 표준 · 규격화 정보의 공유와 표준화 통합 환경 구축을 위한 남북한 공동연구 제안이 그것이다. 제3절에서는 남북한 표준화 통합 프로세스로 통일 전 초기 단계에서 세계 3대 국제표준화기구 즉, ISO, IEC, ITU의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남북한 국제표준화 지원 및 협력 방안을 제시한다. 전문 프로그램을 통한 남한의 북한 국제표준화 환경 구축 지원, 통일 후 사회통합 단계에서의 국내 표준화 관련 기관의 전문가 양성 교육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남북한 상호인증 체계 통일 기반 구축 방안도 제안한다.
제8장에서는 바로 지금 남북한 표준화 협력을 통해 통합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세 가지로 정리해 결론으로 제시한다. 첫째,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협력은 통일 전 남북 경제협력 재개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의 경제협력은 양측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표준 · 규격화 교류 협력의 지속은 통일 과정에서 통일비용 절감이라는 유효한 결과를 가져온다. 셋째,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 프로세스 추진은 통일 후 남북 경제 통합에 필요한 기간을 단축해 사회 안정화를 앞당기고 통일한국의 국제표준화 경쟁력 제고를 담보하게 될 것이다.
본서는 북한의 기관 · 단체 · 인명 등 고유명사는 북한 표기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여기에는 언론 매체와 공장, 기업소의 명칭도 포함된다. 또한, 북한의 시대어는 북한의 일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므로 북한에서 사용하는 대로 표기하였다. 최고지도자의 교시 또는 선전 구호, 표어, 사업 명칭, 브랜드, 제품명 등도 북한 표기 방식을 따랐다. 최고지도자의 교시 등 직접 인용한 부분은 문법과 표현 등 매체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왔다.
본서의 집필은 지난 30년간의 북한경제와 산업표준 연구라는 2대 연구의 종합적인 결과다. 북한 표준 · 규격화 연구는 어느 한 분야만의 연구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자료 확보에 큰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최현규 박사님, 자료 정리와 분석에 혼신의 힘을 쏟은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의 조정연 박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미국에 거주하시면서도 더 나은 한반도를 소망하며 본서를 해란연구총서로 발행하도록 큰 도움을 주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해란 선배님, 고려대 통일보건의료 연구를 이끌고 계신 김영훈 전 고려대학교 의료원장님, 김신곤 의과대학 교수님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본서는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 해란연구총서 시리즈의 서막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연구총서를 발간해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과 김한유, 한두희 과장 등 편집진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3년 겨울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에서
남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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