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오랑주리부터 몽마르트르까지
아주 특별하고 멋진, 파리의 미술관 탐방기
아는 예술가의 몰랐던 이야기, 몰랐던 예술가의 새로운 이야기!
파리 구석구석 작지만 사랑스러운 미술관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내가 사랑한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작지만 꼭 가 볼 만한 파리의 골목 골목 숨겨진 미술관을 소개하며, 그 미술관 속의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아낸 책이다.
파리의 미술관 하면 흔히 루브르나 오르세와 같은 유명한 대형 미술관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렇게 거대한 미술관이 아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놓치면 너무도 아쉬울 미술관 8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인기 있는 카페 앞을 지나가고, 때로는 골목 사이에 숨겨진 미술관을 발견하는 여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단순히 예술가나 미술 작품의 설명을 넘어 오랫동안 프랑스의 예술을 사랑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다. 또한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의 가치에 더해, 그 작품을 ‘만들고’ ‘수집하고’ ‘전시했던’ 사람들의 삶과 열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여성 화가의 이야기이다. 남성이 주류를 차지했던 과거 프랑스의 예술계에서, 주눅들지 않고 또렷이 자신의 자취를 남긴 여성 화가들에 집중하고 있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페르낭드 올리비에에게서 피카소의 뮤즈라는 수식어를 벗겨내고,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만들어진 라이벌 구도에서 엘리자멧 비제 르 븨룅과 아델리아드 라비유기아르를 꺼내보자.
그리고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파리의 화가와 수집가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내가 사랑한 파리의 작은 미술관』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네를 사랑했으나 그의 동생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베르트 모리조, 아들 모리스의 친구와 결혼해버린 쉬잔 발라동 등 작품에 얽힌 인물들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아보는 재미를 담뿍 느껴보기를 고대한다.
본문 중에서
03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 | 프랑스 18세기 장식 예술 컬렉션 Ⅰ 中
- 130
전에도 늘 서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던 두 화가는 아카데미 입회 사건 이후로 원했든 아니든, 의도했든 아니든 공공연한 라이벌이 되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작품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라이벌 관계라는 프레임 안에서 두 여성 화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만일 당대인들이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정치판의 싸움 논리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두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림 실력만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 이 두 사람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 구도에 빠져 기력을 소진하는 대신, 보기 드문 여성 화가로서 애환을 나누며 서로 연대하고 동지애를 쌓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18세기 프랑스 왕실에서 활동했던 탁월한 두 여성 화가와 관련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더 생산적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지 않았을까? 아쉬움과 더불어 오늘을 사는 여성으로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05 들라크루아 미술관| 생 쉘피스 성당 ‘선사들의 예배당’ 벽화 中
- 232
그때 누군가 야곱에게 다짜고짜 결투를 신청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야곱은 싸움을 걸어오는 자가 형과 외삼촌의 첩자가 아니라 천사임을 깨닫고 그 천사, 즉 하느님에게 매달린다.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갈 수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극한 위기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은 야곱은 새벽이 지나도록 천사-신에게 간청하고 애원했다. 이에 지칠 대로 지친 천사가 야곱의 넓적다리뼈를 쳐서 탈골시킨 후 그를 주저앉히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 부를 것을 명하니, 이 말은 곧 “하느님과 싸워서 이겼다.”라는 뜻이다.
- 240
새해 첫날부터 동이 트자마자 지치고 병든 노구를 이끌고 성당 벽화 작업장으로 향하던 노년의 들라크루아. 그가 남긴 짧은 일기에서 우리는 예술 작품을 창작해 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불굴의 예술가, 뼈를 깎는 고통에도 예술 창작 자체로 위로받고 힘을 얻는 타고난 예술가 들라크루아의 위대한 예술혼을 본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벽화를 마음에 담고 성당 문을 나선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들라크루아가 생 쉴피스 예배당 벽화 작업을 통해 어쩌면 외롭고 고단했을 노년의 삶을 고귀한 용도로 바꾸었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을 빛나게 해 줄 어떤 계기가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08 몽마르트르 미술관 中
- 352
이들이 살아 숨 쉬던 공간이 1960년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앞서 언급된 화가들의 목록을 생각하고 화려한 회화 컬렉션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이곳은 매번 주제를 달리해 열리는 기획 전시를 제외하면 미술관치고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소장한 편이 아니다. 물론 미술관 전시의 한 축인 몽마르트르에 관한 자료라면 그 양이나 다양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미술 작품에 한정해서 본다면 오랑주리 미술관이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처럼 관람객의 눈길을 확 잡아당길 만한 유명한 소장품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곳엔 컬렉션의 양과 질로만 평가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공간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신비한 아우라라고 할까. 현재 몽마르트르 미술관에는 제일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 쉬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가 생활하던 공간과 작업실이 예전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매번 그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정확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내 안에서 퍼져 나간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예술가들과 잠시나마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공간을 매개로 과거를 살았던 그들과 현재를 사는 우리의 시간이 교차하는 찰나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술관이 내세우는 “확실히 파리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술관”이라는 문구가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을 찾는 당신의 마음속에도 그 경이로운 찰나의 순간이 도달하기를.
08 몽마르트르 미술관 | 쉬잔 발라동을 추억하며 中
- 387
그런데 로트렉의 그림 속 그녀는 이전 르누아르나 샤반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그저 어여쁘기만 한 여성이 아니다. 로트렉은 마리 클레망틴에게서 거친 세상을 헤치고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버티며 살아 내는 한 인간의 고독과 슬픔을 보았고, 이를 자신의 그림 속에 생생하게 옮겨놓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그녀의 데생을 보게 된 로트렉은 화가가 될 만한 자질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화가로서 새롭게 날갯짓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딱 맞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쉬잔, 그것은 바로 성경의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여인으로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권세 높고 음탕한 장로들에 맞서 당당히 싸운 수잔나의 프랑스식 이름이었다.
그렇게 마리 클레망틴 발라동은 쉬잔 발라동이 되었다. 이후 로트렉은 그녀를 자신과 절친한 사이로 당대 최고의 권위를 누리던 화가 드가에게 데려간다. 안경 너머로 젊은 여인의 스케치를 천천히 들여다보던 50대 초반의 화가는 긴장으로 꽁꽁 얼어붙은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너도 우리 중 하나가 되겠구나.”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드가는 쉬잔을 동료 화가로 인정했고, 판화 에칭 기술을 알려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주며 보호자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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