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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방가르드, 불가능을 그리다

  • H.Press
출판
11.63
MB
소장
15,000스콘
180일 대여
원래 가격: 15,000스콘.현재 가격: 7,500스콘.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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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대해 연구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불가능 그리다』. 혁명의 운명을 함께 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저자는 이 책에서 혁명의 시간을 살면서 예술 창조를 통한 세계 창조의 신념을 져버리지 못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를 향한 꿈과 그것의 좌절의 흔적을 담아냈다.

 

책 속으로

서문

사건으로서의 예술
The Sublime is Now!

나는 공포보다 오히려 외침을 그리고 싶었다.
–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이 책은 우연한 필요에 의해 기획된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대한 불친절한 연구서이다. 여기엔 지난 몇 년간 때로는 호기심으로, 때로는 그저 매혹되어 선택한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문학과 예술 작품들에 관한 논문들이 산만하게 모아져 있다. 애초에 소수의 러시아 문학과 예술 전공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어서 독자들에게 생소한 러시아 문인들과 화가들, 음악가, 영화인들의 이름이 가득할 뿐더러 심지어 중간중간 러시아어 텍스트가 인용되거나 병기되어 있어 미문도 아닌 문장을 더 읽기 싫게 만들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이 책의 표지로 러시아 화가도, 그렇다고 아방가르드 화가도 아닌 르네상스 시대 북유럽의 민속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의 종교화를 선택하였다. 이는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더러 심지어 그림의 저작권이나 해상도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과도 관계가 있지만, 재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표지에 대해 궁리하면서 특별히 브뤼겔을 떠올리게 된 것은 풍속화라는 극도로 제한적인 틀 안에서 늘 다른 세계의 형상을 보여주려 했던 그의 역설적 리얼리즘 때문이었다. 그의 그림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와는 다른 한 편에서 탈재현적이었으며, 또한 불가능을 그리고 있었다.
타락한 천사들이 천국으로부터 추방되는 요한계시록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작품 「반역 천사들의 추락(e Fall of the Rebel Angels)」은 성서에 관한 삽화임에도 불구하고 동화적인 색감으로 그려진 반인반수의 온갖 괴기스러운 악한 생명체들의 형상으로 인해 성서를 재현한다기보다 오히려 반역한다. 이 그림은 풍속화의 사실성보다는 카오스와도 같은 환상성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차라리 이 그림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 L. Borges)가 자신의 창작의 전성기에 펴낸 책 『상상동물 이야기』를 닮았다. 전 세계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도판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이 상상력의 백과사전을 보르헤스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썼다. 그는 마치 환상세계로부터의 전령이 된 듯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천사와 악마, 신화와 전설의 존재들에 대한 재현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재현이라 할 수 있는가? 사실 성서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그린다는 것이 가능한가? 브뤼겔이 그린 괴기스러운 타락한 천사들의 낯설고 환상적인 형상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루시퍼의 정형화된 형상이란 그야말로 성상파괴주의자들이 제기한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만일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세계의 경계 내에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환상이라 이름 붙여진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이 다른 가능세계의 실재라 한다면 그러한 환상을 그리는 것은 창조의 행위이며, 따라서 독신의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재현된 적 없었던 대상을 새롭게 기술하고 가시화하여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혁명이다.
브뤼겔이 성서에서 명명된 존재에 대한 새로운 술어적 형상을 가시화함으로써 성서를 극복하고 있다면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예술의 경계 내에서 재현되지 않았던 것을 주목함으로써 예술의 한계를 넘어선다. 빛의 작용의 결과로 달라지는 대상이 아닌 빛 그 자체를 그리고, 예술적 오브제의 형상이 아닌 예술 질료의 정신성과 절대성에 대해 말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의 탈재현적 시도들로부터, 세계의 움직임과 음악적 시간 그 자체를 표현하려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리듬, 혁명에 의해 ‘변한’완결된 세계가 아닌 그 과정 중에 있는 ‘변화하는’ 유기적 총체로서의 세계의 모습에 천착한 필로노프의 폭발할 듯 채워진 화폭, 가장 현란한 언어를 구사한 작가 고골의 소설을 무성영화로 만들려 했던 형식주의자 트이냐노프의 영상 실험, 언어 기호의 의미 차원과 도상차원을 동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네오아방가르드의 그림시,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나 결과, 혹은 죽음이라는 경계 전후의 대상의 변화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건, 그 순간 자체를 생래적으로 과거에 준거하고 있는 내러티브라는 역설적 형식을 통해 구상화하려 했던 오베리우 작가들의 부조리 문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를 관류하는 그러한 재현 불가능한 것의 예술적 형식에 대한 지난한 추구의 과정을 경외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출판사 서평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부조리해 보이는 예술형식들이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닌 현전(presence)의 미학에 기대어 있으며 이는 결국 숭고라는 미학적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닌 사건 그 자체가 되는 것, 불가능한 다른 세계의 형상을 이 세계 안에서 명멸하는 순간으로 계속해서 체험하게 하는 것, 현대 예술의 숭고한 힘은 바로 이처럼 소멸을 마주한 채로 끊임없이 존재를 강요하는 집요한 현재성에 대한 지향에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예술이 그 경계 내에서 재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주목함으로써 예술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혁명적 시도들을 주목한다. 빛의 작용의 결과로 달라지는 대상이 아닌 빛 그 자체를 그리고, 예술적 오브제의 형상이 아닌 예술 질료의 정신성과 절대성에 대해 말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의 탈재현적 시도들로부터, 세계의 움직임과 음악적 시간 그 자체를 표현하려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리듬, 혁명에 의해 ‘변한’ 완결된 세계가 아닌 그 과정 중에 있는 ‘변화하는’ 유기적 총체로서의 세계의 모습에 천착한 필로노프의 폭발할 듯 채워진 화폭, 가장 현란한 언어를 구사한 작가 고골의 소설을 무성영화로 만들려 했던 형식주의자 트이냐노프의 영상 실험, 언어 기호의 의미차원과 도상차원을 동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네오아방가르드의 그림시,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나 결과, 혹은 죽음이라는 경계 전후의 대상의 변화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건, 그 순간 자체를 생래적으로 과거에 준거하고 있는 내러티브라는 역설적 형식을 통해 구상화하려 했던 오베리우 작가들의 부조리 문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관류하는 재현 불가능한 것의 예술적 표상을 향한 지향을 혁명을 통한 세계 창조의 의지라는 시대의 논리 가운데서 설명한다.

책속으로 추가
현대 예술의 탈재현적 성격은 무엇보다 그것이 하나의 사건이라는 데에 있다. 표상하는 것이 아닌 가리키고 지시하며 인도하는 것으로서 예술이 재현의 한계를 벗어나 현전이라는 새로운 미적 존재론을 드러낸다는 설명은 달리 말하면 과거에 대한 내러티브, 혹은 기존의 세계상에 대한 반복으로서의 예술이 지금, 여기라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닌 사건 그 자체가 되는 것, 불가능한 다른 세계의 형상을 이 세계 안에서 명멸하는 순간으로 계속해서 체험하게 하는 것, 현대 예술의 숭고한 힘은 바로 이처럼 소멸을 마주한 채로 끊임없이 존재를 강요하는 집요한 현재성에 대한지향에 있다.
20세기 초 치열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현대 예술의 존재시학을 선취한다. 아마도 그것은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러시아 혁명의 예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의 정수는 이미 세워진 기념비를 부수고 적극적으로 폐허를 창조하는 무자비한 힘, 즉, 일종의 죽음 충동이다. 그 의미는 파괴의 순간 최고조에 이른다. 완결된 혁명이란 죽음에 대한 선언일 수밖에 없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10월>은 군중이 치켜든 낫과 머리가 잘려 나가는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상이 병치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완성된다. 새롭게 구축된 혁명 이후의 현실은 사실 더 이상 혁명이 아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혁명의 운명을 함께 한다. 그 가운데서 폭발하는 힘과 포효하는 외침을, 변화의 순간을, 생성을 향한 비명을 그린다. 여기에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 책에는 혁명의 시간을 살면서 예술 창조를 통한 세계 창조의 신념을 져버리지 못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를 향한 꿈과 그것의 좌절의 흔적이 담겨 있다.
지난 몇 년간 썼던 글들을 예정에 없던 책으로 묶기 위해 정리하면서 수차례 출판을 단념하려 했었다. 그만큼 많은 부족한 부분들이 보일 뿐더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흥미롭게 다가왔던 주제들이 이제는 지겹기도 하다. 러시아 문화에 대한 책이라면 더 많은 주해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들과 개념들을 친절히 설명해야 한다는 반성은 그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부분이다. 이 많은 부족한 부분들은 스스로에게 빚으로 남겨두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는 데 있어 가장 직접적인 원인과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출판을 독려해 준 러시아연구소의 동료 선생님들과 소장님께, 촉박한 일정에도 이 책의 편집과 교열을 비롯하여 책의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언제나 든든한 힘이자 새로운 자극이 되어 주었던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과 그 가운데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학문적 귀감이 되어 주신, 아마도 이 책의 부족함을 몹시 꾸짖으실 나의 지도교수님께 이 책을 바친다.

목차

서문 7
1장. 현대 러시아 예술과 재현의 문제 15
1.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재현에 대한 반성
2. 말과 사물: 언어기호와 조형기호의 경계를 넘어서
3. 재현의 재현: 기호로부터 사물로
4. 재현의 유토피아를 넘어서
2장. 변화와 생성의 리얼리티 : 파벨 필로노프의 “네오리얼리즘” 55
1. 필로노프와 시간-이미지
2. 필로노프의 예술이론과 네오리얼리즘
3. 폐허로부터의 삶: 서사시 「세계의 자라남에 대한 노래」
4. 지속으로서의 삶과 직관으로서의 예술
3장.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러시아 은세기와 음악적 시간 87
1. ‘언캐니(uncanny)’ 러시아
2. 스트라빈스키의 거짓말: ‘은세기’의 그림자
3. 전체성의 리듬과 발레 예술의 0(零)도
4. 스트라빈스키는 위험한가?
4장. 트이냐노프의 《외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새로운 영화 언어의 탐색 133
1. 고골의 「외투」와 무성영화의 조건
2. 펙스(ФЭКС)의 영화 미학과 트이냐노프의 영화론
3. 루복적 삽화로부터 새로운 영화 언어로
4. 보이는 말(logovisio): 문자 텍스트와 “의미론적 사물”
5. ‘형상’으로부터 영화적 수사(修辭)로
5장. 아방가르드와 시각시(視覺詩) : 20세기 러시아 시의 시각적 실험에 관하여 165
1. 시각시(視覺詩)란 무엇인가
2. 아방가르드의 시각시와 “새로운 시선”의 문제
3. 러시아 언더그라운드의 시각시와 아방가르드 전통
4. 시각시의 극장성과 텍스트의 역동성
6장. 부조리에 대한 변론 : 오베리우 미학과 ‘실재’의 탐색 195
1. 네오리얼리즘과 ‘실재’의 문제
2. ‘시적이성비판’: 오베리우와 부조리
3. ‘(불)가능세계’와 경계(境界)로서의 예술: 부조리와 패러독스
4. 패러독스와 새로운 리얼리즘
미주 231
참고문헌 259

저자 정보

  • 이지연

    • 국적 해당 정보가 없습니다.
    • 출생
    • 학력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러시아문학연구소 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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