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장르는 전통적으로 미술, 음악, 영화 등과 관련하여 많이 논의되어 왔고, 언어와 관련해서는 주로 문학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언어 현상에 주목해 볼 때 장르는 문학과 글(텍스트)에만 국한되는 범주가 아니다. 종래의 텍스트언어학이 글로 된 ‘텍스트종류’에 주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바흐친이 ‘말하기 장르(speech genre)’를 주목한 이래로 오늘날 장르는 글말과 입말로 이루어지는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장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제 장르는 언어적-커뮤니케이션적인 대상, 과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이 통합되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적 행위 전반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행위 장르는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길잡이, 곧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특정한 유형의 행위로 인식,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된다. 본 총서에서는 매체가 어떻게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 주거나 제약하는지, 세미오시스 과정에 있어서 기호 운반체로서의 매체와 장르가 콘텐트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출현에 따라 인지공간이 어떻게 새롭게 확장되는지 등 미디어와 장르의 상호작용을 고찰해 보고 있다.
책 속으로
[머리말]
“세계, 언어, 삶의 세미오시스”를 인문한국(HK) 아젠다로 삼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세미오시스연구센터에서는 제3단계 아젠다를 “변용과 유희의 미디올로지”로 설정하고 이에 관한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세미오시스 학술총서>를 간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모두 여섯 권을 출판하였고 이제 여기에 두 권을 더 보태려고 한다. 그 여덟 번째 책이 될 『매체와 장르』는 일곱 번째 책 『세미오시스의 매체성과 물질성』과 함께 ‘미디어 세미오시스’ 연구의 연장선 위에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미디어 세미오시스’ 연구는 매체 일반 또는 미디어 장르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기호 및 기호작용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 보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불리고 있는 21세기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조망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인문학적인 이해와 성찰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매체는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어 왔고 이로써 인간의 사유 및 존재 방식을 바꾸어 온 만큼 이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매체와 장르』에서는 매체, 기호, 언어에 의한 세미오시스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관점 제공을 통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장르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장르는 엄밀한 규정이 필요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말해 어떤 대상들(우리의 경우에는 복잡한 기호현상, 커뮤니케이션)에서 찾아지는 특정한 ‘결’, 곧 전형성, 유형성, 패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르는 전통적으로 미술, 음악, 영화 등과 관련하여 많이 논의되어 왔고, 언어와 관련해서는 주로 문학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언어 현상에 주목해 볼 때 장르는 문학과 글(텍스트)에만 국한되는 범주가 아니다. 종래의 텍스트언어학이 글로 된 ‘텍스트종류’에 주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바흐친이 ‘말하기 장르(speech genre)’를 주목한 이래로 오늘날 장르는 글말과 입말로 이루어지는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장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나아가 장르는 사회적 행위 장르(예컨대 식사 대화, 인터뷰, 면접, 설교, 세례, 커피 잡담, 증언, 회의, 장보기, 미용실 가기), 매스미디어의 ‘포맷(format)’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 되고 있다. 이제 장르의 문제는 문학과 언어학의 접점을 넘어서 기호학, 수사학, 매체학, 인류학, 사회학, 문화학 등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래의 장르 개념이 대체로 형식적이고 기술(記述)적인 성격을 띤 정태적인 것이었다면, 새로운 장르 개념은 기능적이고 설명적인 성격을 갖는 역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장르는 언어적-커뮤니케이션적인 대상, 과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이 통합되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적 행위 전반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행위 장르는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길잡이, 곧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특정한 유형의 행위로 인식,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어떤 사회적 행위 틀에서 어떤 행위자 역할을 맡게 되는지를 전제함으로써 협동적인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곧, 장르는 우리의 생활세계를 구조화하고 조작하고 해석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확장된 장르 개념을 토대로 하여 매체와 장르의 관계를 고찰해 보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매체가 어떻게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 주거나 제약하는지, 세미오시스 과정에 있어서 기호 운반체로서의 매체와 장르가 콘텐트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출현에 따라 인지공간이 어떻게 새롭게 확장되는지 등 미디어와 장르의 상호작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추가]
제1장 「매체장르의 지형도 ? 텍스트언어학 및 체계이론의 관점에서」(박여성)에서는 오늘날 다변화되고 있는 매체장르의 유형화가 논의된다. 전통적으로 문[예]학을 필두로 예술 분야에서 다루어온 ‘장르’라는 주제는 텍스트언어학 및 기호학 분야에서는 ‘텍스트종류’나 ‘대화 유형’과 관련하여 연구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텍스트언어학 및 매체이론과 체계이론 그리고 인지심리학적 원형이론을 반영하여 제반 기호산출물, 이른바 매체장르의 유형화를 시도하며, 몇 가지 예시(TV, 영화, 라디오, 블록버스터 등)를 통해 연구 지형도를 전망한다. 이로써 매체장르의 유형학과 더불어 중요한 향후의 쟁점이 부각된다. 즉, ‘뉴미디어’ 장르는 ‘소통[에 참여]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른바 체험구매 같은 오늘날의 소비문화와 연동되며, 그 결과 우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다중분할 역할게임(MMORPG) 등으로 짜인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속에 살게 된다. 이 모든 변인의 출발점은 기술 발전으로 극단화된 상호기호성, 상호매체성, 상호텍스트성에 있을 것이다.
제2장 「여행 내러티브 세미오시스 ? 일인칭 관점에서 본 여행 내러티브의 매개성과 장르 그리고 해석」(이윤희)에서는 여행자의 경험과 서술자의 서술 행위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혼종성, 경험성, 스토리텔링의 삼원적 관계가 내러티브성의 세 가지 특성인 매개성, 매개화, 초점화와 맺는 관계를 고찰한다. 매개성은 여행 내러티브의 수사학적 기능을 통해 여행 내러티브 기호 과정에서 여행의 개념과 자아의 개념을 연결한다. 이런 측면에서 여행 내러티브는 자아 내러티브 장르가 된다. 찰스 퍼스의 “I, IT, THOU”의 범주적 개념은 여행 내러티브의 일인칭 관점을 통해 자아가 구성되는 과정을 고찰하게 한다. “여행 내러티브 세계”에서 자아는 자서전적 자아, 전기적 자아, 해석 대행자로서 재현된다. 따라서 여행 내러티브의 장르는 나를 표현하는 자서전적 장르, 타자를 재현하는 전기적 장르, 그리고 세계 속의 나를 해석하는 자아 내러티브 장르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 내러티브는, 자아가 “여행 내러티브 세계”에서 주인공이자, 관찰자이자, 해석 대행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행 내러티브 세미오시스의 주체이자 객체라는 점을 드러낸다.
제3장 「인문강좌의 발화 장르와 세미오시스 ? 도스토옙스키 소설인문강좌를 중심으로」(조준래)는 국내의 도스토옙스키 인문강좌를 사례로 들면서 문학 인문강좌의 발화 장르적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소설이 일상적 언술에 대한 2차적 발화이듯이, 소설을 소재이자 주제로 하며 소설 속 세계를 청중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청중이 살아가는 시공간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인문강좌 또한 소설을 1차적 발화로 사용하여 구축되는 2차적 발화 장르이다. 고차원적 발화 장르로서의 인문강좌는 소설작품을 단순히 반영하지 않고 새로운 의미적 현실을 생성한다. 번역으로 말하면 과감한 의역처럼 소설작품에 대한 축자적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의 고리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특징으로 하는 인문강좌의 특수성은 그 장르적 메타성에 기인한다. 2차적 발화 장르로서의 인문강좌에서 발생하는 세미오시스는 강연자와 청중 사이의 소통뿐 아니라, 고전 텍스트와 청중 사이, 고전 텍스트와 오늘날 사회 현실 사이의 대화적 관계 등 다가적인 입장을 전제하는 독특한 대화 관계를 연출하며, 이런 기호학적 소통 속에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제4장 「로고 스토리텔링」(김요한)은 미디어 학자인 볼터와 그루신이 ‘재매개(remediaition)’와 ‘재목적화(repurposing)’라는 개념을 통해 시대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에 따르면 ‘재매개’란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상 양식,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을 차용하거나 나아가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를 말한다. ‘재목적화’란 한 미디어가 갖고 있는 속성을 취해 그것을 다른 미디어에서 재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재매개’와 ‘재목적화’가 강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이미지를 문자화하려는 노력에서다. 고대 수사학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에크프라시스(ekphra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에크프라시스는 명료한 회화적 구상성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기술 또는 텍스트 장르를 말한다. 볼터는 이를 ‘시각 예술과 맞서려는 문자의 시도’로 정의한다.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적으로 재현하려는 것을 말하는데, 인쇄기술의 발명 이후 언어를 통해 세계를 포착하려고 했던 지난 세기까지의 욕망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시각 미디어가 지배적인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역 에크프라시스(reverseekphrasis)’라는 역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거꾸로 언어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욕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역 에크프라시스의 관점에서 신화를 기반으로 디자인된 몇몇 로고(logo)의 사례를 분석하고, 미디어로서 로고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중심으로 브랜딩의 관점에서 로고를 관찰한 것이다.
제5장 「매체 간의 교차하는 상상력 ? 고전 『겐지이야기』의 만화화 전략」(김정희)은 우선 1990년대 일본의 만화비평이 선과 커트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적 비평이 주류를 이루면서 텍스트 외부의 요소를 가지고 만화를 비평해 온 기존의 비평을 비판한 역사에 대해서 검토한다. 만화라는 매체는 필연적으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즉 외재적 요소를 의식해야만 하는 것으로, 만화표현 자체뿐만 아니라 텍스트 외부에 있는 요소와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만화 비평사는 고전문학의 만화화 과정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여, 이를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만화의 표현법의 발달과 독자의 기호의 습득이 맞물려 소녀만화라는 장르가 발전해 왔다는 점을 분석한 후,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고전작품을 소녀만화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논한다. 또한 고전 『겐지이야기(源氏物語)』를 소녀만화인 『아사키유메미시(あさきゆめみし)』로 탄생시킬 때 대중의 스토리텔링 리터러시(Storytelling literacy)와 소녀만화라는 장르의 특징을 이용한 다양한 전략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다각적으로 고찰한다.
제6장 「뉴미디어와 장르 ? 인터넷 통신을 중심으로」(안미경)는 20세기 후반에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대중매체가 사람들의 삶에서 더이상 분리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사용 또한 사람들의 삶을 이끌며 언어변화를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뉴미디어로서의 인터넷과 새롭게 출현한 장르인 인터넷 통신에 관해 살펴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인터넷 통신언어의 다양한 특성을 표기적, 음운적, 의미, 화용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통신 언어의 글말, 즉 문어적인 특성인 그래픽적인 면을 살펴보고,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기호(pictorial sign)와 같은 그래픽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화자의 태도나 관점, 생각, 혹은 감정을 인터넷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분석 한 부분과 인터넷 통신 언어에서 소리의 길이나 억양과 같은 입말, 즉 구어의 특성이 어떤 그래픽적인 요소와 기호로 표현되는지 분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끝으로,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모티콘(감정 그림 기호)이 언어의 서로 다른 방식, 즉 입말과 글말 형식을 혼합한 인터모댈러티(intermodality)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제7장 「장르의 상호규정성 ? 일제말 잡지를 중심으로」(김은정)은 일제말에 출간 된 잡지에서 문학이 어떻게 유통되고, 확장되고, 재배치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을 검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잡지에서 설문은 잡지 구성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설문’은 문답(問答), 좌담(座談)에 비해 시간적, 공간적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매체 발달로 현재의 설문조사는 방문, 전화 조사,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구조화형이 많지만 당시의 설문은 질문과 답변 형식의 자유 응답형으로 수필 또는 수기에 가까웠다. 수필은 대중을 호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명사(名士)들의 기호, 취미 등의 신변잡기에서부터 현실 인식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설문을 통해 수필이나 기행문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를 끌어내려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잡지 소재의 빈곤과 문학의 빈자리를 설문으로 채우려했음을 살피고 있다.
제8장 「서사의 위기와 소설」(최성욱)에서는 서사의 위기를 규명하고 그것이 소설 장르의 형식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소설의 위기가 근대의 대표적 문학장르인 소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헤겔이 『예술철학강의』에서 ‘예술의 종말’을 예언했을 때, 그것이 예술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 게 아니라 예술의 전통적 기능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것처럼, 소설의 위기 역시 역사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전통 소설의 기능이 새롭게 변신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언급했듯이 카메라의 등장이 회화의 기능변화를 추동했던 것처럼 영화의 등장은 소설에 기존의 스토리텔링과는 다른 서사방식을 요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소설의 위기란 서사의 위기이자 화자의 위기다. 이 글은 서사 위기가 소설 장르의 형식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벤야민과 루카치의 소설이론을 중심으로 서사시에서 근대소설로의 발전과정을 역사철학적으로 규명하고, 그 다음 무질의 소설론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이 겪고 있는 서사의 위기와 이것이 소설의 형식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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