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초판발행 2024.08.20
들어가며
대한민국에서 대학 졸업은 이제 지옥을 의미한다.
뻔한 얘기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자원도 없고 땅도 없기에 산업구조 자체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다고 하는 이공계열의 경우도 갈수록 취업길이 막막해지고 있다. 필자가 엔지니어로 첫 취업을 했던 2014년도에도 매년 급속도로 없어지는 일자리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때도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 아예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산업들이 대세에서 물러나고 IT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인 취업강자인 전, 화, 기(전기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출신 학생들의 일자리 찾기도 만만치 않게 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문과 학생들에겐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특히 연구개발, 생산에 관련이 없는 전공을 선택한 문과 학생들이 지원하는 직렬은 각 기업마다 아예 신규 채용 자리가 없거나 자리가 나더라도 한 자릿수 TO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십 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문과생들의 인기 직무였던 기획 및 기타 관리부서 같은 경우는 해당 산업 실무를 아는 사람이 훨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취업한 경력있는 엔지니어들을 전환배치시켜 써먹는 것이 유행이 된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 와중에 그나마 기업에서 꾸준히 수요가 나는 문과 직렬은 재무/회계, 그리고 법무뿐이다. 그중에서 재무/회계 파트는 세무사, CPA 등 문과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격증 시험을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자격증 혹은 1차 합격 등의 스펙으로도 취업이 가능한 바, 여러분들이 상대적으로 정보에 접근하기가 수월하다. 상경계열 전공 또는 이중전공을 택한 학생들은 굳이 별도로 수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법무는? 전공 또는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법학 지식을 접했으면 되는 것인가? 법학전공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무엇보다 굉장히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중에서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만 따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기본적인 법 체계 자체에 대한 이해를 갖추는 것 정도가 최선일 뿐이다. 기업법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습득할 길이 없다시피한 것이다.
어떤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지 모르고 교과서로만 법을 공부하면 실무에 투입될 만큼의 이해도를 갖추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러분을 뽑을 사람들도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계약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갓 학부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은 계약서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심지어 그 모양새도 모르는데 어떻게 계약서를 검토하겠는가? 즉 우리는 ‘일’을 하려고 취업을 하는데 실제 세계에서 어떤 ‘일’을 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필자가 여러 학교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 요즘 이루어지고 있는 법무교육의 대부분은 일반적 이론 수업을 제외하고는 사내“변호사”들을 위한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전문적인 교육뿐이다(예를 들어 ‘기업 공정거래 실무’와 같은 유). 즉 우리는 법을 배웠지만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교육, 특히 그들의 진로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 법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다. 법은 변호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뉴스에서 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업 내에서 어떤 업무들이 이루어지고 어떤 법적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무팀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법무부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부분 기업의 특급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조차 밖에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학생들이 실제 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알고, 방대한 법의 세계 중 ‘기업실무’에 사용되는 내용을 추려 실무에 적합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로스쿨 시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필자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변호사들의 ‘단가’가 낮아져서 기업들이 변호사를 고용하기가 수월해졌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신세대 변호사들에게 사내변호사 자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이름을 알 정도의, 우리가 가고싶어 하는 회사의 법무팀에는 변호사들이 드글드글하다. 기존에는 변호사가 아닌, 일반적으로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맡던 업무의 대부분이 사내변호사의 일이 되었다. 그러면 오히려 법무직렬 취업을 준비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을 뽑는 일반 법무 직렬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아니, 더 커졌다. 위와 같은 사유와 더불어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컴플라이언스와 계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뀜에 따라 법무팀 규모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법무팀의 업무이지만 변호사가 관여하지 않는 영역의 규모도 더 커졌다. 분쟁해결과 형사 실무와 같은 분야는 대부분 사내변호사들이 직접 투입된다. 하지만 변호사 몸값이 아무리 내려갔다 하더라도 계약서 검토, 이사회, 주주총회, 컴플라이언스와 같이 변호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업무들까지 모두 변호사에게 맡기기에는 무리다. 이 분야들을 맡길 수요는 그야말로 커진 기업법무의 덩치와 더불어 함께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여러분이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 법학에 대한 이해도 위에 이러한 실무를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보는 것이다. 이는 비단 취준생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산업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우리는 기업법무를 다룰 줄 아는 비변호사를 원한다. 모조리 알 필요는 없다. 그건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어느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 그 어느 정도를 충족시켜드리고자, 그렇게 여러분들의 취업과 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지에서 취업과 관련된 일반적인 내용과 기업법무조직이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일들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여러분이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거나, 이미 배웠더라도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지나쳤을 법학 지식들, 그러나 실무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식들을 추려 모아 보았다. 기본적으로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그 지식을 ‘실무’와 연관지을 수 있도록 서술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지만, 법을 딱히 배우지 않은 분들도(혹은 배웠지만 다 잊으신 분들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중간중간 배경지식에 신경을 썼다. 단순히 법학지식 나열이 아니라 이 부분이 기업에서 벌어지는 어떤 상황에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되는지를 꼭 언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법을 어느 정도 아는 취업준비생을 위해 쓴 책이지만, 기본적인 법적지식과 법무조직에 대한 이해는 꼭 기업 법무 취업이 아니더라도 산업계 전반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고, 기타 여러 자격증 공부나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지적 자원이 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전공의 독자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법은 도구다. 그리고 그 도구는 모든 국민이 쓸 수 있어야 한다.
2024년 찌는 듯한 8월
변호사 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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