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브레히트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세계는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순의 인식은 세계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문학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작품들을 구상하며 이를 기록한 『저널』에서 그가 “세계의 수수께끼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다”라는 테제를 남긴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수수께끼를 제시하기 위해 서사극에는 다양한 생소화 기법들이 사용되고, 작품 구성의 방식으로 변증법이 적용되었음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다. 근대 사회를 살았던 브레히트의 시대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경제적·문화적 토대는 다를지언정, 세계는 모순으로 구성되며, 이에 대한 인식이 그 극복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이다. 이 책에는 2001년에는 다루지 못한 31편의 미완성 희곡을 해설한 글들이 실려 있고, 또 브레히트의 연극이나 연극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과 브레히트의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 등에 관한 주제어 118개에 대한 해설이 추가되어 있다.
책 속으로
완성희곡
성경
Die Bibel
정동란
세부 장르: 단막극
집필 연도: 1913년 4-6월
초연: 1933년 6월 7일, 파리
텍스트: 신전집 1권, 7-15쪽
등장인물
할아버지, 아버지(시장), 소녀, 소녀의 오빠
내용 요약
적군에 포위된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시장은 딸을 적군 사령관에게 제물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딸은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는 할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제물이 되는 것을 거절한다. 결국 도시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다.
1장
16세기 신교를 신봉하는 네덜란드의 한 도시가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스페인 군대에 포위된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호사스러운 시장 관사의 거실에서 할아버지는 불안해하는 손녀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준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장 45-50절) 손녀는 오빠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자신에게 해준, “우리는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라는 말 가운데 특히 ‘우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오직 신에게만 의지할 것을 권유한다.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냉혹한’ 성경 구절 대신 구원받는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2장
시장이 아들과 함께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다. 아들은 가톨릭 군대의 공격이 임박했는데 도시는 더 이상 방어 능력이 없어 곧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으며, 도시 전체에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딸은 전쟁 중에도 풍족하게 사는 자기 가족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은 이들의 수가 너무 많아 그러한 개인적 도움이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할아버지는 ‘승리 아니면 죽음뿐’이라고 말하면서, 신앙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바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손자는 가톨릭 군대에 의해 짓밟힌 신교도의 도시 아녀자들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상기시키면서 할아버지를 비판한다. 마침내 시장이 집에 돌아온 목적을 말한다. 시장은 적군이 도시를 공격하지 않는 대신 시민 모두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과 적군 사령관과 하룻밤 동침할 여인을 보낼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자신의 희생에 대해 고민하나, 결국 희생을 거부한다. 오빠는 한 사람이 희생하면 전 도시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생에게 희생을 강권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1,000명의 목숨보다 깨끗한 영혼이 더욱 중요하다는 성경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손자를 비난한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끝까지 희생을 거절하자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다.
3장
포성이 더욱 가깝게 들린다. 할아버지는 손녀를 위로한다. 가톨릭군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된다. 포격 소리가 더욱 커지고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할아버지는 종소리가 신의 목소리라고 외친다. 손녀 역시 신의 목소리라고 외치면서 화염에 휩싸인 집 밖으로 나간다. 집안 전체에 불길이 번지고, 얼마 후 주변이 조용해진다.
생성사
브레히트는 고등학생 시절인 1914년 1월 자신이 다니던 김나지움의 교지 『디 에른테』에 『성경』을 발표한다. 이 드라마는 구약성서와 헤벨의 『유디트』에 대한 패러디로 구상되었으며 19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다. 『성경』은 브레히트의 신전집에 수록되기 이전에는 브레히트의 단순한 습작품 정도로 간주되었다. 『성경』은 미완성 희곡들을 제외하면 가장 짧은 소품이다.
작품 해설
가톨릭을 신봉하는 아버지와 독실한 신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브레히트는 어머니의 영향을 더 받아 프로테스탄트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가 1920년대 중반 이후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지만, 기독교와 성경은 브레히트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어린 나이에 쓴 이 희곡에서는 당시 그가 읽었던 여러 작품의 영향이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성서에 나오는 유디트 이야기이다. 유디트는 성서 외경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유디트는 남편을 잃고 경건한 생활을 하던 유대 땅의 평범한 과부이다. 느브갓네살왕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도시를 포위하자, 신의 계시를 받은 그녀는 과감히 과부 옷을 벗어 던지고 적군의 장수인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그를 유혹한다. 유디트가 술에 취한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하자, 이스라엘 군은 장수를 잃은 적군을 물리친다. 유디트는 위기에 빠진 조국을 종교적 믿음으로 구한 종교적 애국 여성으로 추앙받는다.
브레히트의 이 단막극은 유디트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시장의 딸이 어려움에 직면한 도시를 위해 스스로 몸을 바칠 것을 거부한다. 딸은 도시가 포위되어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시 전체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자기희생은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한다. 브레히트는 이와 같은 모순된 행동을 제시하면서,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이미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적 태도를 비판한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유디트를 할아버지의 종교 이데올로기와 조국을 위해 희생을강요하는 오빠의 애국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변용한다. 소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강압적인 종교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기희생을 실천하지 못한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이러한 맹목적인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성서와 헤벨의 드라마에서의 ‘행동하는 유디트’와는 달리 소녀를 ‘행동하지 않는’, ‘갈등하는 인물’로 변용시킨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헤벨의 『유디트』에 대립되는 작품Gegenst?ck으로도 해석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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