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 나에게도 묵지근하게 짓밟히는 고통. 그 고통이 품어내는 달큰함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때로 바다가 있고, 마음 안에는 때로 들길이 펼쳐져 있다. 마음속에 있는 바다에는 마른번개가 어지러이 춤을 춘다. 마음 안 들길에는 검은 늪이 열려 있다. 어째서 소리도 내지 못하는 번개가 아스라이 노니는 바다는 마음속에 있으며, 어째서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진한 늪은 마음 안에 놓인 길을 막고 있을까.
삶은, 그리하여 아름답거나 즐거운 것만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울 깨달음 속..
– 출판사 제공
책 속으로
1. 마당 한켠에 목련나무가 꽃봉오리를 맺었다. 하긴 날이 이미 3월 마지막 날이니, 새삼 이상할 일은 아니다. 토요일이다. 비가 아침부터 조분조분 나리시고 있다. 이 또한 3월 마지막 토요일이니 눈이 오는 것보다는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봄비는 어딘가 쓸쓸한 여인네의 뒷모습을 남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는 비가 있다. 이 비가 그치면 빛이 차오르게 사치로운 봄이 오는 것일까.
아무리 궁리를 하고 음반을 뒤져도 봄 녘 비오는 저녁나절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긴 음악과 날씨를 접붙이려는 것이 웃기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열렬한 동경이 없고 따라서 나는 음악이라는 섬세한 세계에 쉽게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에 할 수 있는 듯이 꾸역꾸역 거들먹대어보았자, 그건 허세이다. 나는 삶 속에서 그런 허세에 길들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음과 빛깔을 지닌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노래를 듣고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무언가 따뜻한 감동이 가슴 속에서 소근대며, 나는 안개가 피어오르는 비취 빛깔 숲을 떠올렸고, 그것이 곧 내 온몸을 휘감아버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때. 그런 때가 있었다. 고요해지는 마음의 축축함 안에서 먹먹함을 느꼈던 때. 비는 종일 오신다. 마당 한 구석에 목련나무에 꽃봉오리가 열렸다. 아마 다음 주면 목련은 아주 호사스럽게 꽃봉오리를 열어내고야 말 것이다. 오늘은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2. 산다는 것에 경계警戒가 없다는 것은 나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일 수 있다. 그들은 항상 다른 이들과 키를 재고 눈치를 살피며, 그들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반면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을 해하면서 살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흐릿함으로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해를 끼침이 알게 그리고 고의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 안에 살고 있고, 따라서 다른 이들이 나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도 보장할 수 없다. 세상을 산다는 것에 해를 당할 수 있음은 엄연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 중 하나이다. 따라서 세상 안에 살아갈 때, 나는 다른 이들을 어느 정도는 경계하며 나에게 닥칠 수 있는 해로움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러한 경계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닐까. 경계가 없다는 것은 내가 주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 써서 보아야 할 것들, 귀 기울여야 할 것들을 주워 담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경계삼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묵지근하게 짓밟히는 고통. 그 고통이 품어내는 달큰함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때로 바다가 있고, 마음 안에는 때로 들길이 펼쳐져 있다. 마음속에 있는 바다에는 마른번개가 시커멓게 깊은 바다 위에서 어지러이 춤을 춘다. 마음 안 들길에는 검은 늪이 열려 있다. 어째서 소리도 내지 못하는 번개가 아스라이 노니는 바다는 마음속에 있으며, 어째서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진한 늪은 마음 안에 놓인 길을 막고 있을까.그리하여 삶은, 아름답거나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울 깨달음 안.
3. 많은 날들이 지나가버리고, 이른 저녁나절에 얼음비가 퍼부었다. 참 오래도 땅위에 굴러 떨어지는 작은 얼음덩어리들. 하늘이 시커멓고 천둥이 울고 마르지 않은 번개도 쳤다. 이러다가 정말 이 땅덩어리가 저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찰라의 공포들. 이미 날은 오월 끝자락으로 접어들어 이번 봄은 아카시아도 극성맞지 않구나 하며 소소히 보내고 있던 늦봄인지 이른 여름인지 무렵. 그러나 하늘에서는 때를 못 찾는 얼음덩어리들을 퍼붓다니. 놀이터에서 까르르 까르륵 숨 가삐 놀고 있던 아이들이 삽시간에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종종 걸음으로 길을 가던 사람들도 어딘가로 피해버리고, 길은 텅 비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밝고 따뜻한 불빛이 내려 쪼이는 어느 가게 안에서, 나는 그토록 컴컴하고 소란스러운 공포를 관조할 뿐이다. 모든 공포는 고요하지 않다. … 문득. 내가 품속 깊이 감추어둔 고통도 고요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내게 산다는 것은 그러했다. 마땅히 얼음비에 마주하지 못하고 적당히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피하는 삶. 그러나 적당히 따뜻하고 밝음은 내 고통을 어루만지지 않는다. 하긴 모든 마음속 바다와 마음 안 들판은 온전하게 내 몫이어야 하므로. 무언가에 의하거나 무언가에 의지해서 마음속 바다를 아우르고 마음 안 들판의 늪을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사는 것은, 산다는 것은 그러하다. 나에게 늘 그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에 기초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존재와 시간』에서 출발하여 하이데거 사유의 길을 좇으려 한다.
제1장에서는 하이데거가 문제 삼고 있는 존재물음이 인간현존재에서 어떻게 열어 밝혀질 수 있는가를 탐구함으로써 현존재의 삶이 구성되는 방식과 관계들을 살피고 있다.
제2장에서 글쓴이는 제1장에서 조망한 삶의 문제를 죽음의 현상과 관련하여 연구한다. 글쓴이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결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 그럼에도 늘 인간에게 ‘아직은 아님’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죽음의 문제를 기다림과 내맡김이라는 근원적인 결단의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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