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르네상스 시기 격정은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처럼 더 이상 죄악의 온상이자 기피의 대상만이 아니다. 격정이 있기 때문에 르네상스 인간은 그의 독특한 개별성을 확보하며, 동시에 이로 인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간기계는 이 격정이라는 연료를 태워서 작동하고 생명력을 유지한다. 욕망의 끝에 죽음이라는 정체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격정으로 인해서 결코 패배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남긴다. 그들의 죽음은 패배를 넘어서는 삶의 크기를 확인해주는 계기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의 신분과 격정의 상관관계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인간을 격정의 동물로 파악함으로써 각 개인이 자신의 정서의 영역 안에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임을 확인한다.
책 속으로
제1장
“눈의 잘못”과 인내심
– 『실수연발』과 격정의 문제
인내라는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번안 희극인 『실수연발』에서부터 뚜렷하다. 셰익스피어는 극작 초기부터 일찌감치 성급함이나 참을성 부족에서 빚어지는 판단 착오 및 오인의 문제를 작품의 주제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이 초기 희극의 작품 제목에서의 ‘실수’는 그리스 비극에서의 실수, 즉 과녁을 잘못 맞힘을 뜻하는 하마르티아(hamartia)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것,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의미한다. 1594년 12월 28일 크리스마스 축제기간 동안에 런던의 법학원 중 하나인 그레이즈 인(Gray’s Inn)에서 시종장 극단(Lord Chamberlain’s Men)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은 1589년 8월 이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바 셰익스피어의 가장 초기 작품에 속한다.
소문에 의하면 이 도시에는 사기꾼들이 우글거리고
눈속임에 능한 민첩한 요술사들이며
마음을 현혹시키는 사악한 마법사며
몸을 병신으로 만드는 영혼을 살해하는 마녀들이며
변장한 사기꾼들이며, 떠버리 돌팔이 의사들이며
등등의 허가받은 범죄자들이 그득하다지.
정말 그렇다면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겠어.
They say this town is full of cozenage,
As nimble jugglers that deceive the eye,
Dark-working sorcerers that change the mind,
Soul-killing witches that deform the body,
Disguised cheaters, prating mountebanks,
And may such-like liberties of sin:
If it prove so, I will be gone the sooner.1 (1.2.97-103)
마법과 눈속임 사기는 인간의 허황된 탐욕에 의존적인 동시에 탐욕을 부추기는 일종의 놀이이다. 이곳에서 안티폴러스가 강조하는 마법과 속임수가 인간의 마음과 몸을 변형시킨다는 사실은 이들을 매개하는 탐욕의 기형성을 암시한다. 기형의 괴물을 만들어 내는 에베소의 인간들은 성급함과 탐욕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들이다. 격정이라는 풍랑을 잠재우고 이곳에 가족의 재회와 화해라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인내심이다. 인내심을 통한 결말의 화해는 인고의 시간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시간의 궁극적인 승리와 성숙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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