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인문학의 위기는 시대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의 위기이기도 하다. 삶의 어두운 순간을 응시했던 예술가, 시대의 혼란을 뚫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이론가, 불확실한 거친 상황과 맞서는 젊음과 자유를 향한 이미지와 이야기는 인문학적 통찰이 요구되는 중요한 대상으로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시각인문학은 19세기 중반부터 동시대까지 포괄해서 이미지를 통한 문화와 예술의 의미화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를 주요 내용으로 제시했다. 시기를 조정한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동시대 시각예술의 경우에 이미지 저작권의 문제가 보다 세심하고 첨예하게 요구되는 상황이어서 부득이하게 이 부분은 추후에 보강될 예정이다.
책 속으로
1장 시각의 시대, 시각 인문학의 기초
현대문화는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중심으로 개인이 적극적인 문화의 해석자로 기능하고 있다. 이에 현대문화의 중요단면을 형성하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를 대상으로 중요한 흐름을 비판적으로 정리, 검토하고 대표사례를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현상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시각 중심의 현대문화는 기본적으로 근대 시기에 제기된 새로운 시각 방식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근대 시기 가장 주된 감각으로서 매 순간 시각적인 자극을 만날 수 있는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라는 새로운 생활공간 속에서의 시각경험과 체험은 이전 시기의 시각화 방식과는 다른 관점, 체계, 개념을 형성하는데 주요 토대를 제공했다. 또한 산업화, 도시화를 통해 빠르게 변하는 물리적 세계를 관찰하는 주
요 요소로서 시각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빛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해석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예컨대, 신성한 빛, 럭스(lux)에 대한 관점이 기독교 공인 이후, 서구 시각 세계의 주요관점을 형성했다면, 근대 시기는 인간의 눈에 지각되는 빛, 루멘(lumen)이 물리적 세계의 관찰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시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객관적인 시각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외부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화가가 사용하였던 격자망은 특정한 방식으로 공간을 관습화시켰으며, 이러한 격자망은 현대 도시의 스카이라인에서 주요 시각적 형식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화가가 외부대상을 관찰하고 이것을 예술영역으로 그대로 전사하기 위한 행위는 흡사 캔버스를 투명한 창문으로 보고 이 틀을 통해 외부세계를 관찰하는 시각적 보기의 전형으로 자리했다. 이러한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역사적이고 문화적 과정을 거쳐 때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보기의 방식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인간 신체의 감각에 보다 충실한 방식으로 변화되기도 했다. 예컨대, 르네상스 시대에 개발된 원근법은 하나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공간을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후퇴시킴으로써 평면에 가상의 3차원의 공간을 부여하는 예술적 고안물이었다. 흡사 실제로 3차원의 공간이 펼쳐지는 것 같은 환영성은 사실은 하나의 시점으로 환원된 보기의 방식일 뿐이며 실제로는 두 눈을 통해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보는 법이다. 이처럼 시각예술 분야에서 절대 권위를 지녔던 원근법적 공간은 탈육체화된 시각적 포착이며 이는 상당히 인위적으로 보는 방식임을 깨닫게 된 것은 시각예술의 특성을 규명하고자 했던 근대 시기 예술가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처럼 이제까지 시각예술 분야에서 영속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는 새롭게 변화된 시대 상황 안에서 새로운 보기의 방식과 예술개념, 문화에 대한 인식으로 대체되었으며, 그러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에 접어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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