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신화와 콘텐츠』는 3개의 장으로 나뉘며, 제1부 신화와 상징에서는 먼저 신화에 대한 총론을 기술하고 현대의 신화학자들의 ‘이론’을 점검하는 취지로 신화 연구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에리히 노이만과 질베르 뒤랑 그리고 폴 리쾨르의 신화론을 다룬다. 제2부 신화와 해석에서는 신화의 현대적 해석에 집필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제3부 대중 문화콘텐츠와 신화는 이런 취지로 할애되었고, 집필자들은 각자 관심 있는 장르콘텐츠를 선정해 신화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시도해보았다.
책 속으로
[서문]
21세기에
신화를 읽고,
해석하고,
활용한다는 것
1
신화는 연대기적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신화는 이를 필요로 하고 요망하는 사회에서는 언제고 어디서고 재연되는 게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적 선형성을 초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화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신화는 인간의 시공간 안에 유폐돼 있지 않고 끝없이 인간중심적 시공간 안에서 탈인간적으로 활동하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며 살아 숨 쉰다. 원형신화의 생명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시대를 초월해 신화를 읽고, 해석하며 활용하는 직접적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화는 인간과 공존하며, 인간사회를 살찌우는 자양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화가 ‘보통명사’나 ‘고유명사’처럼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신화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신, 변화, 변용을 허용한다. 이것이 신화의 본질적 특징이며 신화의 요체다. 따라서 신화가 내용면에서 일부 수정이나 재창조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 왜곡’과 같이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가 고대 인류의 세계 인식에 대한 영창(映窓)으로 기능하고, 특히 현대인에게 현실 인식의 계기로 작용한다면, 신화적 소재와 에피소드들의 임의적 변형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일은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AI)의 시대로 상징되는 21세기가 되었음에도 현대인들은 여전히 신화에서 많은 것들을 차용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대체 뭘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신화 속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보편적 원형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의 기본적인 내용과 원리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다양한 콘텐츠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신화가 응용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신화, 신화적 원형 스토리는 시대를 초월해 생명력을 가지며, 현대문화의 생산 및 소비 코드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연구하고 또 응용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리라.
출판사 서평
신화는 연대기적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신화는 이를 필요로 하고 요망하는 사회에서는 언제고 어디서고 재연되는 게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적 선형성을 초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화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신화는 인간의 시공간 안에 유폐돼 있지 않고 끝없이 인간중심적 시공간 안에서 탈인간적으로 활동하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며 살아 숨 쉰다. 원형신화의 생명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시대를 초월해 신화를 읽고, 해석하며 활용하는 직접적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나뉘며, 제1부 신화와 상징에서는 먼저 신화에 대한 총론을 기술하고 현대의 신화학자들의 ‘이론’을 점검하는 취지로 신화 연구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에리히 노이만과 질베르 뒤랑 그리고 폴 리쾨르의 신화론을 다룬다. 제2부 신화와 해석에서는 신화의 현대적 해석에 집필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제3부 대중 문화콘텐츠와 신화는 이런 취지로 할애되었고, 집필자들은 각자 관심 있는 장르콘텐츠를 선정해 신화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시도해보았다.
[책 속으로 추가]
2
신화와 콘텐츠, 이 책은 정확히 이런 기획 의도를 공유한 집필자들이 1년 전에 모여 닻을 올렸다. 물론 집필의 제일 원칙은 신화를 각자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으로 정했다. 신화 자체의 의미나 가치를 캐묻고 따지기에 초점을 두기보다 해독자의 창의적 상상력의 접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신화가 신화의 틀을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탈신화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탈신화화는 신화의 의미를 ‘현재’에서 찾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탈신화화의 시도가 신화의 내용을 전적으로 왜곡하거나 이탈하려는 것은 아니다. 집필자의 창
의적 해석에 의해 재구성된 신화는 동시대성(contemporarity)을 갖는다는데 의의가 있다.
두 번째 집필 원칙은 각자가 근년 들어 고민하고 있는 철학적 화두를 신화를 통해 반추해보는 것으로 정했다. 그렇게 ‘공론장’을 마련해 집필자들이 추거(推擧)하는 신화는 이 시대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국내의 독서시장에서 주로 ‘소비’되고 있는 신화의 전모는 어떤 상황인지를 점검해보고 싶었다. 특히 제3부 대중 문화콘텐츠와 신화는 이런 취지로 할애되었고, 집필자들은 각자 관심 있는 장르콘텐츠를 선정해 신화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시도해보았다. 제1부와 제2부에서의논의들이 다소 이론적인 것이라면, 제3부에서의 논의는 실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향후 대한민국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의 구성에 관해 부연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신화와 상징에서는 먼저 신화에 대한 총론을 기술하고 현대의 신화학자들의 ‘이론’을 점검하는 취지로 신화 연구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에리히 노이만과 질베르 뒤랑 그리고 폴 리쾨르의 신화론을 다룬다. 첫 번째 박희영의 글은 역사적으로 인간 정신이 발전하는 데 신화가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했는지를 검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우선 신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신화 발생의 외적 조건으로 사회적 기원과 신화발생의 내적 조건으로 인식론적 기원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신화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신화적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가장 본질적이라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러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태도를 체화하는 데 있다. 나아가 박희영은 기존 신화의 종류를 의례신화, 영웅신화, 창조신화 등으로 구분하여 신화의 기능을 검토하면서, 신화가 시대의 격변 속에서도 인류가 추구할만한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고 실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신화는 이러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적 사유를 발전시켜 윤리의식의 기저에 하나의 원형으로서 작용하였기 때문에 미래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을 한다. 두 번째 장영란의 글은 노이만의 어머니의 원형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상징체계에서 ‘여성성’이야말로 인간의 삶 자체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밝히는 것이 신화 및 상징 해석에 있어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런 시각에서 장영란은 여성성의 원형과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상징을 분석하고, 원형적 여성성의 세 가지 발전 단계와 변화 양상을 소개하며, 원형적 여성성의 양가성이 신화 속의 상징들과 이미지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노이만의 작업은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콘텐츠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세 번째 송태현의 글은 뒤랑의 신화방법론이 갖는 공헌과 약점을 동시에 소개하는 데 연구 목표를 두고 있다. 주지하듯 뒤랑의 신화비평과 신화분석은 신화에 토대를 둔 새로운 문학 및 예술 방법론이다. 이러한 뒤랑의 방법론적 시도는 신화에 대한 인식론적 재평가 위에서 가능한 작업이다. 문학 및 예술의 비평에서 뒤랑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각 비평들 간의비생산적 이전투구를 중재하는 일종의 ‘화해책’이라 할 수 있다. 이름 하여 그의 ‘신화비평’가 ‘신화분석’은 단지 문학 및 예술비평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한 시대와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송태현의 글은 뒤랑의 신화방법론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문학에 적용시킬 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는지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무턱대고 서구적인 틀 속에 억지로 이질적인 문화를 맞추려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로컬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것 아니냐는 그의 질문에 대해 우리 모두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 윤성우의 글은 상징론과 신화론, 의지론과 텍스트론으로 구성된 폴 리쾨르의 해석학을 의지론이 어떤 맥락에서 상징론과 관계를 맺는지, 상징론과 신화론의 핵심 논점이 무엇인지를 리쾨르의 텍스트론과 관계 속에서 기술함으로써 상징론과 신화론이 리쾨르 해석학의 전체적인 틀 속에서 어떤 위상과 지위를 가지는지를 밝히고 있다. 윤성우의 글은 현대의 신화론이 어떻게 리쾨르에게서 확장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표적인 글이라 할 수 있으며, 리쾨르 스스로가 참구(參究)한 신화의 동시대성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와 제3부를 매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2부 신화와 해석에서는 신화의 현대적 해석에 집필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먼저 손윤락은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 세계를 이룬 그리스인들에게 세계의 이미지(imago mundi)는 어떤 것이었을까를 추적한다. 그가 분석한 텍스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와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등의 서사시이다. 이들이 그린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그리는 세계와 유사한 것일까 아니면 판연히 다른 것일까? 탈레스 이후 서양인들에게 우주의 이미지는 반구형 하늘에 천체들이 수학적 질서를 가지고 정위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는 그리스인들이 남긴 신화 작품들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서사시에는 세상의 시공간적 태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종종 신화적 사건의 구체적인 때와 장소가 언급되며, 특히 하늘과 땅, 산들과 바다, 강들과 호수 같은 공간 개념이 신의 이름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신화는 단일한 작가의 산물이 아니며 전승들은 상충할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의 단일하고 완전한 세계 그림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전체적인 윤곽을 재구성해낸다면 거기서 우리는 ‘구형우주’와 ‘지구중심주의’라는 서양 사상의 맹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조명동은 그의 글에서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최근의 문화콘텐츠들이 그 캐릭터나 에피소드들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신화적 요소에서 차용하고 있지만 그 전체적 내용이나 캐릭터의 성격 또는 그들 상호간의 관계는 새롭게 재구성하거나 거의 창작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특히 조명동은 그 중에서도 ‘하데스’를 마치 기독교 문화권의 사탄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나름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하데스는 그 자체로 사악한 존재도 아니고 악의 근원도 아니다. 그는 그저 죽은 자들의 제우스이고 그들이 거하는 장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많은 문화콘텐츠작품에서 하데스를 마치 사탄처럼 묘사하고 있거나 사탄의 대용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그 이유가 물까? 그것은 대중적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강력하고도 멋진 악역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게 조명동이 내린 결론이다. 세 번째 김기홍의 글은 캠벨의 원질 신화를 이론과 실제라는 2층위로 구분해 소개하고 있다. 원질신화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영향 받은 원형 탐구의 결과물로서 세계의 모든 이야기는 근원적 동일성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캠벨에 따르면 신화는 출발-입문-회귀라는 3단계를 거치며,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보면 16단계의 패턴으로 나타난다. 특히 원질 신화는 최근 할리우드를 비롯한 문화콘텐츠산업계에서 기획 및 제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패턴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원질신화의 문화콘텐츠적 적용의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신지영은 질 들뢰즈의 철학에서 개인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체화’라는 개념이 선결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의 주체는 주지하듯 ‘신화화’되어 있으며, 자아의 성(城)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지영은 바로 이 문제를 들뢰즈의 사유 도정을 따라 해결해보고자 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근대적 주체의 신화화는 우선 능동적 의식과 재현의 문제에 원인이 있다. 해서 들뢰즈는 탈주체화를 시도하게 되는 것이며, 결국 진정한 주체는 근대의 신화화된 주체가 탈주체화될 때 비로소 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신지영의 핵심 논제다. 이러한 논제에 바탕해 신지영은 특히 『오이디푸스』와 『햄릿』에서의 주인공은 들뢰즈가 말한 ‘주체가-되는 시간’, ‘주체-되기’를 몸소 행위로 증명하는 인물임을 창의적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제3부 대중문화콘텐츠와 신화는 이미 앞서 밝힌 바 있듯 신화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콘텐츠에 방점이 있다. 강미라의 글은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2012)을 하나의 영웅모험담으로 보고 조셉 캠벨(『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관점에서 플롯을 분석한다. 영웅과 여정 혹은 모험은 별개일 수 없다. 영웅은 모험을 통해서 영웅이 된다. 모험은 영웅이 아닌 자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모험이다.
캠벨에 따르면 동서고금의 영웅 모험은 길가메쉬가 하든, 바리데기가 하든, 해리포터가 하든, 모두 유사한 구조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통과 제의의 양식을 띤다. 신화가 대중문화콘텐츠에서 반복되는 것은 삶의 근본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삶에 필요한 메시지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성수는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저술한 시리즈 아동소설 『나니아 연대기』가 대중문화 작품으로 몇 차례 각색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가 특히 『나니아 연대기』의 제1편인 『사자, 마녀와 옷장』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제1편의 구조가 선악의 대결 구도로 되어 있으며, 신화적 차원에서의 인간 심리 및 문화적 상징들이 코드화되어 있는가 하면, 기독교 정신과도 상통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루이스가 독자들에게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루이스는 신화를 활용해 어린아이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쉽게 전달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기독교 정신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니아 연대기』의 상징성이라는 게 김성수의 결론이다. 임우형에게 유대-기독교의 경전인 성서는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자산이다. 같은 논리로 성서의 내용을 향유하고 해석하는 것 역시 신앙인들 또는 신학자들만의 작업이 아니라, 누구나 성서를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고, 그 해석 또한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임우형이 드림웍스(Dreamworks)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이집트왕자》를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집트왕자》는 신학적 해석의 결과물들을 충실히 전달해주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라기보다 현대인들의 관심과 흥행을 목적으로 성서를 신화적으로재해석한 콘텐츠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신학적 해석과 신화적 해석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이집트왕자》가 성서 『출애굽기』와 다른 점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는게 임우형의 결론이다. 박치완의 글은 애니매트릭스 《제2의 르네상스》에서 묘사되고 있는 현대의 비트적 기계-결정론에 대해 비판적 메스를 가한다. 21세기는 모름지기 기술신화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 기술의 신화는 경제를, 정치를, 군사를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최근 헐리우드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까지 지배하려는 과학-제일주의, 기계-전체주의, 전자·정보-제국주의를 조장하는 SF들이 버젓이 양산되고 있다. 허나 테크놀로지와 자본이 결탁된 ‘기계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란 몰역사적, 탈지구적, 비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인류의 고유자산인 다양한 로컬문화들을 획일화시킨다는 게 박치완의 결론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가면을 쓴 기계적 상상력의 종착지,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을, 인간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의 반휴머니즘적 가상세계의 마법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일종의 당위라 하겠다. 안효성은 전통적 신화 속의 영웅들이 현대의 문화콘텐츠에서 어떻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지와 영웅 신화라는 새로운 서사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영웅이 인간의 집단무의식에 깃든 원형적 이미지의 일종이라고 본다. 그리고 분석심리학은영웅 신화 속의 영웅이란 우리의 정신이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이런 정의 하에 안효성은 월트 디즈니의 《헤라클레스(Heracles)》와 브렛 래트너 감독의 《허큘리스(Hercules)》에 영웅 신화의 고전적 가치가 훌륭하게 계승되고 있음을 입증해보이고 있다. 현대의 우리가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 콘텐츠적 영웅상의 특징을 살핌으로써 시대정신이 지향하는 ‘주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안효성의 결론이다. 임대근은 중국의 대표적 산화콘텐츠라 할 수 있는 『수신기』를 ‘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신화에 대한 새로운 독법(讀法)을 제시하고 있다. 『수신기』는 주지하듯, 동진(東晋) 시기 역사학자인 간보(干寶)가 지은 책이라고 전해온다. 총 20권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454개나 된다. 임대근은 이들 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구성, 재맥락화하여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탄생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유의미한 스토리텔링 자원을 발굴할 필요는 없는지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수신기』를 읽어간다. 실제로 이미 적지 않은 콘텐츠들이 『수신기』를 원형으로 삼아 기획, 제작되고 있다. 허나 새로운 스토리텔링 자원 발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하며, 특히 『수신기』가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 사례로서 적합하다는 게 임대근의 결론이다. 송희영의 글은 한 집단의 공통의 기억이 전승되어 반복되고 있는 기념제의 속에서 발견되는 신화적 요소를 탐색하여, 현대사회에서 신화적인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보고자 하는 데 목표가 있다. 그 구체적 사례로 송희영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반혁명 운동에 결집한 농민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화파 정부군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대량 학살당한 ‘방데전쟁’을 지역축제로 승화시켜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역문화콘텐츠 사례로 발전시킨 역사야외극 《시네세니(Cin?sc?nie)》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연구는 전쟁과 죽음에 관련된 집단기억의 수집, 보존 및 영속적인 전승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주로 기념물, 기념관, 기념상 등 유형적인 매체를 형상화하는 데 치중되어 온 기존의 문화적 기억표현 방식이 어떻게 외연을 넓혀갈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이 책은 올해 대학 교정을 떠나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박희영 교수님께 헌정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옥고를 주신 집필자 모두는 박희영 교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들이거나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분들이다. 박희영교수님이 강의를 통해 뿌린 ‘신화’라는 씨앗이 고대철학, 신화론, 문화해석학, 프랑스철학, 예술비평론 등으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기까지 무려 30 여년이 걸렸다. 계절이 100번 이상 바뀐 결과다. 학문을 한다는 것, 함께 학문을 한다는 것, 한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킨다는 것, 이는 거의 불가능에의 도전에 가깝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거의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제1장에서 레비스트로스, 엘리아데, 바르트의 신화론 소개가 빠진 상태라서 이 책이 과연 ‘신화의 심포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집필자들이 나름 협주를 해보려고 애를 써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집필자분들의 노고에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릴까 한다. 교정과 편집에 애를 써준 황재민 군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이제 이 책은 콘서트 마스터인 장영란 교수의 손을 떠나 컨덕터인 박희영 교수님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생각들이 지휘자의 생각에 융해되어 하나의 심포니가 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련(修練)의 과정이 뒤따라야 할지? 막상 책을 엮어보니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집필자를 대표해서 서문을 쓰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박희영 교수님의 제자 사랑과 후배 사랑에 대한 감사의 변을 이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201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박치완·장영란 纂修
리뷰
상품평
아직 상품평이 없습니다.
팝업 메시지가 여기에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