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40년 통역 인생, 그 짜릿했던 기억들
1983년 파리 유학에서 돌아와 올림픽조직위, 대통령비서실, YTN 등에서 통역 현업을 마치고 1999년 모교에 임용되었을 당시 조그만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내가 “꼭 필요할 것”이라며 만들어 준 개인 홈페이지 www.jckwak.net가 20년 동안 교수 생활의 동반자가 될 줄은 몰랐다. 정년을 앞두고 20년 동안 업로드 한 내용을 어떻게든 책으로 남기고 싶어 우선 학교 출판원에 문의했는데 뜻밖에도 단순한 정리를 넘어 시중에 판매될 수 있는 저서 발간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오래전에 쓴 글들은 상황이 달라지거나 시류에 어긋나는 내용도 있었으나 역사적 기록으로 그냥 두었다. 출판원의 백승이 작가와 함께 홈페이지 내용의 약 1/10만 추려 이 책을 만들게 되었는데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독자는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시면 감사할 것이다.
– ‘서문’에서 –
책 속으로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끝나고 인공지능이 통번역사들을 잉여인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통번역대학원 교수들이 불안한 눈길을 나눌 때였다. 한 후배교수가 정년을 앞둔 필자에게 “선배는 어떻게 보면 가장 행운아다. 통번역사가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만든 통역대학원의 1기로 입학해 통번역의 성수기를 40년 만끽하고 인공지능이 통번역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자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씀이다. 우리나라에 통역사라는 직업이 없었을 때, 우리도 언젠가는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를 주최하게 되면 영어, 불어를 유창하게 통역하는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막연한 사명감으로 동양 최초로 한국외대에 통역대학원이 설립된 것이 1979년 9월. 군 복무를 마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있던 필자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왜 하필 힘없는 통역사가 되려느냐는 주위의 시선을 물리치고 입학해 정부 장학생으로 그 어렵다는 파리의 통번역대학원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서울올림픽조직위에 스카웃되어 파리에서 배운 영어와 불어로 신나게 통역하면서 통역안내과장 노릇을 했다. 올림픽이 끝나자말자 최초의 한국인 국제회의통역사협회AIIC 회원이 되었다. 조직위원장이 대통령이 되자 5년 동안 대통령 내외를 통역하면서 청와대 공보비서관 노릇도 했다. 출신조직이라는 뿌리가 없어 뉴스채널 YTN의 창설요원으로 국제부장 노릇을 한 지 5년 되던 1999년 초 꿈처럼 모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후배를 가르치는 일은 그때까지 해본 모든 일 중 가장 재미있고 보람찬 것이었다.
– ‘정념 기념 비망록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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