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한국사회에서 작가는 당대의 사회문화 속에 늘 깨어 있는 존재였고 시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통찰력을 지닌 지식인이었으며 그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껴안는 드넓은 사회적 개인이었다.
작가가 만들어낸 소설은 배경과 사건 속에 인물이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고, 인물을 통해 인간과 세계가 지향해온 또는 지향할 만한 가치를 이야기라는 오래된 문화 관습으로 구현해낸 결과물이다.
이야기는 사회문화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인간의 이야기 생산능력과 직결된다. ‘이야기 만들기’의 본능은 ‘이야기하기’라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작은 일화들은 그 사회와 인간이 겪은 오랜 경험과 낯선 문화 체험들을 담고 있다.
작가들은 고귀한 열정으로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글쓰기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살았던/살고 있는’ 사회에 ‘작품’이라는 사회문화적 결정체를 내놓는다. 이 작지만 귀한 결정체는 ‘거울’과 ‘등불’처럼 꼭 그만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을 밝혀주고 그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발휘한다. 작가는 가야 할 행로를 가늠했던 저 신화시대의 예언자, 제의를 수행했던 사제의 잔영을 품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어두운 시대와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같은 존재다.
작가는 그 자신을 포함해서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 딛고 선 세계의 상처와 고통을 마주한다. 그는 예민한 시선과 감각으로 굳어진 통념을 해체한 뒤 새로운 생각에 걸맞는 새로운 언어로 인류애를 확장시키는 인간정신의 총화를 보여준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체험과 세계에서 접한 스캔들과 추문을 반죽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말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자들이 겪은 혹독한 일화들을 ‘대신 말하는 존재’이다.
근대문학의 초석을 다진 이광수와 ‘신으로서의 작가’ ‘작가신’을 표방한 김동인, 빈자(貧者)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식민지 수탈경제 속에 상처받고 몰락해가는 노동자와 소작인들의 절규를 껴안으며 연대하고 제휴하려 했던 조명희와 최서해가 그러하다. 해방 직전 거대한 제국과 맞서는 저항적 주체로 거듭나는 김사량의 자전적 산문이 그러하고,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심미적 세계를 구축한 황순원의 소설세계가 그러하다. 또한, 전후세대작가 중 대표주자인 오상원의 소설세계와, 60년대 안수길의 신문소설에서 당대 현실을 포착하는 작가의 안목을 확인해볼 수 있다. 70년대에서부터 90년대에 걸쳐 있는 조정래의 소설세계, 한글완역본 대하장편인 김석범의 「화산도」는 미해결의 역사를 서사화하는 필생의 노력과 헌신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적 현실과 사회문화사적 안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통찰은 늘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성찰로 나타난다. 1930년대 초반 동만주 소비에트에서 벌어진 동족학살인 반민생단투쟁을 추체험한 김연수의 장편에서, 김소진의 작품들에서, 김원일・공선옥・정지아・손홍규의 작품집에서, 「객주」의 작가 김주영과의 대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기억을, 또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사를, 그리고 아들딸들의 이야기를 고안해내기 위해 헌신하는 사회문화적 개인들이다. 작가 개인이 하나의 세계이고 문화이며 한편의 이야기이고, 작가들이 창안해낸 이야기는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가진 고통과 환부인 셈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당대로만 예속되지 않으려 스스로 성찰하고 전망하며 상상해낸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진실이자 사회문화사적 맥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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