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큰 나라가 아니다. 1993년 1월 1일자로 이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두 나라로 분리가 된 이 나라는 체코가 약 1천 50만, 슬로바키아가 약 5백 50만의 인구를 가지며, 두 나라의 합한 면적이 약 12만 8천km²에 불과하다. 물론 유럽 수준에서 보면 중간 규모의 나라지만 세계 기준으로 보면 작은 나라이다. 따라서 자국어로 되었건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외국어로 써졌건 이 나라에 관한 역사서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역사의 초기에서 끝까지를 다룬 본격적인 역사서는 더욱 많지 않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공산 정권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온 역사서들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 사관이 배어 있기에 자료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1989년 민주화 혁명 후 때맞춰 출판된 1991년의 마레크(Marek, J.) 외 공저의 『체코와 체코슬로바키아사 I, II』와 1992년의 초르네이와 벨리나 외 공저의 『체코 왕국사 I, II』에 크게 의지하였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시대별로 열두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많게는 여섯 개, 적게는 두 개의 절을 둘 뿐 그 이하의 소목들로 세분하지 않았으며, 각 장은 문화 부분을 포함토록 하였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들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나라의 본질과 정수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 때문이다.
머리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유럽의 정 중앙에 위치하는 유럽의 지리적인 심장이요 핵이다. 남과 북이 만나고 동과서가 마주치는 이 땅은 그래서 수많은 전쟁들이 할퀴고 지나갔으며, 예부터 보헤미아, 즉 체코 땅을 지배하는 자가 유럽을 지배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 땅은 지정학적인 요충지였다. 기원전에는 켈트 인들이 이 땅을 지나갔고, 그 후에는 게르만 인들이 북상하는 로마 군인들과 이곳에서 대치하였으며, 기원 후 6세기에서 8세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프랑크 제국이 아바르 족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고, 9세기에는 대(大)모라비아 제국을 사이에 두고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었으며, 10세기에는 마자르 족의 헝가리가 침입해 들어왔고, 13세기에는 타타르 족이, 16세기에는 오스만 터키가 국토를 유린하였으며, 15세기의 후스주의 전쟁과 17세기의 30년 전쟁이 국토를 황폐화시켰고, 18세기와 19세기의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 19세기 초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세계 대전이 이 땅을 무대로 하였거나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전쟁의 결과로 슬로바키아 민족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로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할 때까지 10세기 초부터 무려 1천년 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체코 민족은 1620년 빌라호라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3백년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 두 민족은 용하게도 역경을 잘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이를 두고 역사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는 말을 상기해 본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이들 두 민족의 불굴의 정신과 참다운 지혜의 결과일 따름이다.
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열강들로 둘러싸인 작은 나라인 이들 두 민족의 생존 전략은 무력이 아니라 굳건한 정신력과 상대적인 도덕적 우월성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큰 나라를 이기는 것은 칼이 아니라 펜이라는 점을 강조해 온 민족 지도자들은 교육을 장려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며, 인본주의를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숭상하도록 가르쳤다. 그리하여 14세기 자신들의 역사의 황금기에 알프스 이북에서는 최초로 프라하에 대학을 설립하였고, 이 대학의 총장인 후스와 그의 추종자인 헬치츠키는 15세기 초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주도하고 계승하였으며, 17 세기의 코멘스키는 근대 교육의 토대를 구축하였고, 19세기의 도브로프스키와 같은 민족 부흥 운동가들은 프라하를 슬라브 학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팔라츠키는 범슬라브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20세기 철학자 대통령인 마사리크는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서유럽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물심양면으로 프라하 언어학 서클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인들의 정신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산주의를 개혁해보려 하였던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의 개혁 운동을 통해서도 드러났으며, 이러한 전통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창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치를 표방한 극작가 대통령인 하벨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620년의 빌라호라 전투에서의 패배로 체코가 독립을 잃고 난 후, 약2세기에 걸친 암울한 역사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기 시작하는 19세기의 체코 민족 부흥 운동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바가 교육이었는데, ‘교육에 구원이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 두 개의 무기는 책과 교육이다.’ 라는 것이 이들의 구호였다. 이처럼 교육을 통한 민족의 회복과 부흥을 부르짖은 민족 지도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19세기 말에 이르러 체코는 유럽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고 읽고 쓰는 능력이 가장 높은 교육선진국이 될 수 있었고, 선진된 교육을 바탕으로 경제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20세기 초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신생 국가로 탄생하였을 때, 이 나라는 이미 발전된 기계 공업을 바탕으로 많은 부문에서 세계 10대 공업국에 진입해 있었다.
체코 인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민족이다. 하지만 이들은 익살과 유머를 즐기고 해학과 풍자가 대단히 풍부한 민족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쿤데라 문학의 본질도 우스꽝스러운 웃음이지만 역시 웃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카프카 문학과 더불어 세계적 고전이 된 하셰크의 소설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세계 대전 중의 모험』은 유머와 풍자의 바이블로 불리기도 하는데, 체코 문학의 이러한 전통은 멀리 중세 시대의 익살극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 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음악적인 민족이다. ‘그가 체코 인이면 그는 음악가이다.’라는 말이 벌써 16세기 말부터 회자되기 시작하였고,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체코 땅은 ‘유럽의 콘서바토리’로 불릴 정도였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전후하여 유럽을 풍미하게 되는 서커스단에 체코 인 연주가가 한 사람 끼지 않으면 행세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체코 인들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이 나라에서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땅의 문화적 유산은 놀라울 정도이다. 지방 곳곳에 유서 깊은 성곽, 건축, 조각물들이 산재해 있고,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아르누보, 모더니즘 양식의 예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도 프라하는 ‘유럽의 미술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내 전체가 문화 유적들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도시보다도 인간의 손길이 다듬어 낸 고색창연한 건축 조각물들과 자연의 선물인 숲과 꽃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황금의 도시’ 프라하의 봄은 스메타나와 모차르트의 음악과 더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해 내면서 수많은 예술가들과 방문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체코 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받고 자신들은 얼마를 주었느냐는 산술적인 물음에 대해 받은 것보다는 준 것이 더 많았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이러한 긍지는 결국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와 더불어 인류 공동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도덕적인 우월성을 확보하고 영토와 인구 면에서의 작은 나라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세계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로서 비슷한 여건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큰 나라가 아니다. 1993년 1월 1일자로 이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두 나라로 분리가 된 이 나라는 체코가 약 1천 50만, 슬로바키아가 약 5백 50만의 인구를 가지며, 두 나라의 합한 면적이 약 12만 8천km²에 불과하다. 물론 유럽 수준에서 보면 중간 규모의 나라지만 세계 기준으로 보면 작은 나라이다. 따라서 자국어로 되었건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외국어로 써졌건 이 나라에 관한 역사서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역사의 초기에서 끝까지를 다룬 본격적인 역사서는 더욱 많지 않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공산 정권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온 역사서들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 사관이 배어 있기에 자료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1989년 민주화 혁명 후 때맞춰 출판된 1991년의 마레크(Marek, J.) 외 공저의 『체코와 체코슬로바키아사 I, II』와 1992년의 초르네이와 벨리나 외 공저의 『체코 왕국사 I, II』에 크게 의지하였다.
본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시대별로 열두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많게는 여섯 개, 적게는 두 개의 절을 둘 뿐 그 이하의 소목들로 세분하지 않았으며, 각 장은 문화 부분을 포함토록 하였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들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나라의 본질과 정수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끝으로 졸저의 출판을 지원해 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인철 총장님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졸저가 나오기까지 자료 수집에서 타이핑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 ·슬로바키아 어과 여러분들과 체코 어 및 슬로바키아 어 교정에 도움을 주신 가브리엘라 마툴로바(Gabriela Matulova)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5년 3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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