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포시에트는 오래전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 동포들이 초기에 정착한 작은 러시아 항구의 이름이며,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중심 거리로 주변에 롯데호텔과 현대자동차의 전시관,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인 빅토르 최를 위한 추모의 벽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포시에트에서 아르바트까지>의 주목적은 지난 150년 동안 축적된 러시아 속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펴보고 유형화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들은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 땅을 찾았던 동포들과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시베리아.극동 지역을 누비던 애국선열들의 피땀과 눈물이 마침내 러시아 땅 중심부에서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의 기적과 민주화의 결실로 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지난날을 이 책을 통해 짚어볼 수 있는 것. 상징적 의미가 큰 이 두 공간의 명칭을 책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 속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방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수 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유럽과 중유럽, 발트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캅카스,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 등 많은 나라와 인접해 있다. 짧다고는 하지만, 한반도와도 두만강을 경계로 인접해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서로 다른 문명에 속하는 다양한 국가와 민족과 교류하며 독특한 삶의 양식과 문화예술을 일궈왔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에게 러시아가 미국, 일본, 중국 같은 나라들보다 더 낯설게 여겨지듯이, 대다수 러시아인에게 자국 영토 동쪽끝자락에 인접해 있는 한국은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은 동양의 한 나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까닭은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고 냉전 체제가 지속하면서 과거 소련과의 직접적 교류 통로가 완전히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로서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 교류가 훨씬 활발했던 유럽과 비교할 때 동북아 지역 국가들, 그중에서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지난 세기말에 크게 달라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소련이 한국을 새롭게 발견했고, 1990년 수교 이후에는 많은 한국인이 개혁·개방 정책을 내걸고 변화하는 소련을 앞다투어 방문했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기대감이 충만하던 이 시기에 한국과 러시아 국민은 오랜 역사를 두고 양국 간에 이루어진 다양한 교류와 상호 영향에 미처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오랜 단절과 적대 관계 속에서 한·러 교류의 과거 역사 상당 부분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묻혀 있던 탓도 있었다.
양국의 많은 사람에게 있었던 이런 피상적 인식과는 달리, 두만강을 경계로 짧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 150여 년 동안 꽤 흥미로운 교류 경험을 쌓았다. 한반도 최북단 지역에 거주하던 우리 동포들의 러시아 이주와 정착으로 시작된 양국 간 인적 교류는 이후 한국인들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현지 삶에 적응하고 이바지하는 긴 역사로 이어졌다. 다른 한편, 바다를 통한 대외 교류가 원활치 못했던 오래전 한국에서 북방의 이웃 러시아는 서양식 문화를 대표하는 이색적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육로를 통해 서로 오가며 직접 교류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해주 지역에 우리 동포들이 이주해 정착하면서 시작된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접촉과 교류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몇 단계의 변화 과정을 겪었다. 한인들이 농사지을 땅을 찾아 러시아 국경을 넘었던 시기 이후에는 일제 치하에서 조국 해방을 위해 시베리아·극동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그 중 일부 인사는 식민 통치하의 민족해방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료되어 스스로 모스크바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1937년에는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던 동포들이 하루아침에 강제 이주되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 한인들은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에서 맨손으로 다시 새 삶을 개척해야 했다.
다른 한편, 사할린에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와 탄광에서 일하다가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살게 된 동포들이 있었다. 이러한 경로로 러시아 땅에 뿌리내린 한국인들은 러시아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스탈린 사망 이후 도래한 이른바 해빙기에는 소수민족의 재이주가 부분적으로 용인되었고, 중앙아시아 지역 거주 한인 중 일부는 유럽 지역을 포함한 러시아 주요 거점 도시로 진출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후 전문 분야로 진출한 러시아 한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성을 가진 노동 영웅, 운동선수, 소설가, 학자, 화가, 음악가 중에는 전국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동포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한국인의 생활 습관과 음식 문화가 소개되고 또 그중 일부가 현지인들 사이에서 확산했다는 사실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한국 관련 연구와 교육의 역사도 한국에 대한 이해에 적잖게 이바지했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 한국학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단절과 복원을 거듭하던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학문적 전통을 유지해왔다. 서구 최초의 한국어 교육, 한·러 사전 편찬, 한국 고전문학 번역, 한국 역사 연구 등 기초 인문 분야에서 러시아 한국학은 빛나는 업적을 이뤘다.
희소 분야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한국학이 낳은 소중한 성과들은 직접 교류가 아예 없었거나 북한과의 제한적 소통 채널만 가동되던 시기에 한국과 러시아(소련) 두 나라를 간접적으로나마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갑자기 직접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비즈니스, 관광, 문화예술, 교육과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수도 모스크바에는 어학연수를 받으러 온 한국 대학생과 유학생,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지상사 직원과 가족들이 밀려들었다.
오래전 러시아 땅에 뿌리내리고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던 우리 동포들 외에 새로운 한국인들이 러시아 중심부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과 함께 러시아에는 한국산 전자제품과 다양한 소비재가 상륙했다. 삼성과 LG의 각종 전자제품과 함께 도시락 라면, 초코파이 같은 한국 식료품도 러시아 시장을 석권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 대중문화, 이를테면 케이팝, 드라마, 영화, 한식당 등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한국인으로 러시아에 귀화한 빅토르 안 선수가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에 여러 개의 금메달을 안겨주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한국에서 발레 수업을 하고 러시아에서 활동하며 세계적 수준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는 김기민 같은 인물도 있다. 요컨대, 오늘날 러시아 속 한국은 선명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150년 전 러시아 영토 주변부에 정착한 한인들에서 시작된 러시아 속 한국의 첫 발자취는 역사 속에서 넓은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여러 굴곡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정치와 외교, 경제와 무역, 학술과 문화, 관광과 인적 교류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쌍방향의 호혜적 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다. 『포시에트에서 아르바트까지』라는 제목을 붙인 이 책의 주목적은 지난 150년 동안 축적된 러시아 속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펴보고 유형화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들은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 땅을 찾았던 동포들과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시베리아·극동 지역을 누비던 애국선열들의 피땀과 눈물이 마침내 러시아 땅 중심부에서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의 기적과 민주화의 결실로 피어나면서 러시아인들 사이에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시에트는 오래전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 동포들이 초기에 정착한 작은 러시아 항구의 이름이며,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중심 거리로 주변에 롯데호텔과 현대자동차의 전시관,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인 빅토르 최를 위한 추모의 벽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상징적 의미가 큰 이 두 공간의 명칭을 책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출한 러시아 속 한국의 발자취는 결코 우리 한국인들의 독자적인 노력으로만 형성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정신적 교감과 상호 이해,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한 상호 존중과 수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울러 두 나라 사이의 교류 과정에서 역사를 통해 누적된 유무형의 다양한 자산은 앞으로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주도할 한층 더 창의적이고 호혜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협력과 협업을 매개로 더욱더 위력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정보 수집과 관련 문헌 조사, 주요 인사 인터뷰, 라승도, 이은경 박사의 현지 답사와 사진 촬영 자료 등을 두루 활용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구성한 ‘러시아 속 한국 발자취 150년’이 양국 관계의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고, 그동안 상호 교류 성과를 정리하고 더 나아가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 2018년은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고, 2020년에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이할 예정이니 이번 작업이 2년 전 출간한 『사바틴에서 푸시킨까지: 한국 속 러시아 발자취 150년』과 짝을 이루어 양국 관계와 교류의 문화적, 인문적 차원을 재조명하는 데에도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여러 사람의 관심과 성원, 도움이 많았다. 특히, 우윤근 러시아연방 주재 대한민국 대사님, 이석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총영사님, 이진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총영사님, 엄기영 이르쿠츠크 주재 총영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등은 러시아 속 한국 발자취와 관련한 자료와 정보가 많아 이들 지역 재외공관의 도움이 긴요했다. 매우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우리 책의 원활한 출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준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신선호 팀장님과 이환 D&B 박정원 이사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출판사 서평
‘150년 동안 축적된 러시아 속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서…’
포시에트는 오래전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 동포들이 초기에 정착한 작은 러시아 항구의 이름이며,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중심 거리로 주변에 롯데호텔과 현대자동차의 전시관,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인 빅토르 최를 위한 추모의 벽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포시에트에서 아르바트까지』의 주목적은 지난 150년 동안 축적된 러시아 속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펴보고 유형화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들은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 땅을 찾았던 동포들과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시베리아·극동 지역을 누비던 애국선열들의 피땀과 눈물이 마침내 러시아 땅 중심부에서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의 기적과 민주화의 결실로 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지난날을 이 책을 통해 짚어볼 수 있는 것. 상징적 의미가 큰 이 두 공간의 명칭을 책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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