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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와 교사

  • (주)박영사
출판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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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13,500스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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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초판발행 2024.06.15

 

엇갈린 시선이 마주보며

같은 곳을 향할 수 있다면

 

 

 

 

 

1.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49재가 있기 하루 전인 9월 3일 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내 지도로 석사학위를 받은 30대 현직 초등학교 교사 다섯 명과 화상으로 만났었다. 주말마다 서울 종각역 앞에 검은 옷을 입고 모이던 초등 교사들을 온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때였다. 그 여름 나는 초등학교 교단을 지키는 대학원 제자들의 안위가 걱정되고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다. 명색이 사범대학 교수이니 그들의 하소연을 누구보다 내가 먼저 직접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우울감과 무기력에 사로잡힌 그들을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직접 당했던 학부모의 도를 넘은 민원 이야기,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과 교육부의 안일한 대처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디지털 공간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그들은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저 묵묵히 버텨오다가 막 폭발해 있었다. 그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나는 당시 고3과 중2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했다. 나나 아내가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 가정은 어느 해 아이의 담임 교사에 대해서는 아주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늦여름 밤 제자들의 분노를 삭이는 성토를 들으며, 내 기억 저편에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담임 교사가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왔다. 불현듯 학부모인 나도 초등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존재적 불안의 잠재적 원인 제공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그날 밤 화상 모임은 몹시 불편하기도 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의 교수와 두 아이의 학부모라는 두 정체성이 내 안에서도 갈등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우리 교육의 심각한 문제 상황을 풀어갈 작은 희망의 씨앗을 내 안에서는 찾지 못한 채 제자들과의 화상 모임을 마쳤다.

2.

젊은 초등학교 교사 제자들과의 화상 대화가 있던 날로부터 40여 일 전인 7월 23일 밤, 나는 한국학부모학회 주요 임원들과 긴급 화상 회의를 가졌었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교육부의 대처에 교사들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하던 때였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비난도 일고 있었다. 학부모의 시선에서 교육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한국 교육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학회 임원 대부분에게 이런 사태 전개는 적지않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이나 도를 넘은 행동은 과거에도 있었다. 학교를 찾아가 교사와 언쟁을 하다가 폭언과 폭행을 저지르는 일은 그 전에도 보도된 적이 많았다. 교사도 사회적 규범과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적이 많았다. 몇 해 전에도 이른바 ‘스쿨 미투’로 일부 교사의 성희롱과 성폭력의 실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부모의 민원으로 교사가 스스로 생명을 끊고, 그 일로 교사들의 분노가 들끓는 사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학회 임원들은 서이초등학교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학회 회원 전체에게 이메일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보내고 가능한 답변을 요청하기로 했다.

 

첫째, 이번 사안이 발생한 구조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둘째, 이 사안에 대처하며 우리 사회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셋째, 이 사안과 관련하여 우리 학회에서 학술 토론과 연구의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관식 의견을 묻는 것이라 답변을 보낸 회원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내용은 매우 진지했다. 아래는 답변의 주요 내용이다. 첫 번째 구조적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학교의 변화 지체,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 변화, 교사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의 부재를 지목하는 답변이 많았다. 학교가 민주화의 진전으로 권위주의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컸지만 그동안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처럼 교사가 학생에게 절대권 권한을 행사하는 시대가 아니다. 부모는 부모 나름의 방법으로 학교의 교육과 운영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그 결과를 학교와 적절하게 소통할 수단이 없다. 학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마다 땜질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할 뿐 시스템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교사 조직은 관료적 성격이 너무 강하고, 직급과 연령대가 다른 교사들 사이의 소통과 상호 이해가 부족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하기 쉽지 않다. 직급과 경력이 낮은 교사가 기피 업무를 덤터기 쓰듯 맡는다. 교원의 업무 배분이 합리적, 민주적이지 않다. 수요자 중심 교육 담론으로 학부모가 교원을 겸손하게 존중하는 인식이 약해졌다.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인식 변화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교사는 교권이 실추되고 권한을 박탈당했다고 인식한다. 학생은 인권을 아직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는 학교에서 무슨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충분히 몰라 공교육을 전반적으로 불신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면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학교에 전혀 없다.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면 무고인 경우라도 교사가 직접 대응해야 한다. 학교의 관리자와 교육청도 교사의 입장에서 공동으로 대응해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우리 사회가 유의해야 할 것으로 정치적 유불리, 단체 이익의 유불리를 따지는 해법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답변이 많았다. 교권의 강화가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머지 않아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을 상호 대립하는 관계로 보는 시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가 걱정된다. 학교에서 민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 간의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학부모는 학부모회와, 교사는 교감과 교장 등을 중심으로 교사 조직과 우선 상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태도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 간의 소통 구조가 확립되면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대책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 책임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학교를 개선하는 데 더 많이 수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저경력 교사에게 과도한 업무를 분장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 신장과 학교자치, 교육자치를 지원하는 시스템 개혁이 논의되어야 한다.

세 번째 한국학부모학회의 학술 토론과 연구 주제로 학부모-교원 협력 관계, 학부모-교원 의사소통 활성화, 학부모와 교원의 교육권, 지역별 학교급별 학교 문화의 변동, 학생 문화, 교사 문화, 학부모 문화, 학습권과 수업권 상호 증진 방안, 학교교육을 위한 학부모의 역할과 책무, 교대와 사대 교육과정에 ‘학부모의 이해와 소통기술(가칭)’ 포함 방안 탐색 등이 제안됐다. 교사와 학부모 갈등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주체간 갈등의 현황과 진단, 그리고 대안 모색을 주제로 국제학술행사를 개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서로가 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역할극을 개발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기회를 갖게 하자거나,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거나, 학부모가 필수적으로 연수를 받게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학회원들의 이런 의견을 모아 8월 6일 두 번째 긴급 화상 임원 회의가 열렸다. 서이초등학교 사태가 불거지기 1년여 전 한국학부모학회는 학부모와 교사의 엇갈린 시선을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학술 논문과 학교 현장의 다양한 경험을 발표하고 이를 엮어서 책으로 출판할 계획을 세웠었다. 이 계획에 따라 2022년 하반기와 2023년 상반기 학술대회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가지고 있는 엇갈린 시선을 여러 측면에서 확인도 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마주 보며 학교와 지역 공동체를 함께 새롭게 일군 사례를 듣기도 했다. 두 번째 회의가 있었을 즈음에는 여러 저자가 학술대회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 결과를 반영해 원고를 이미 제출한 뒤였다. 그렇지만 임원 회의에서는 책 출간을 유보하고 학부모와 교사의 파트너십을 주제로 2023년 하반기 학술대회를 한 번 더 갖고 책을 보완하기로 했다. 특히 학교 현장의 교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를 기획하고, 해외의 교사-학부모 파트너십 구축 사례 발표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책은 2022년과 2023년 세 번에 걸친 한국학부모학회 학술대회의 결과물인 셈이다.

 

3.

서이초등학교 사태로 촉발된 교사들의 집단 행동은 2023년 8월 22일 교육부의 ‘학생·교원·학부모가 상호 존중하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 발표, 9월 21일 이른바 교권 보호 4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그리고 10월 6일 대통령의 현장 교사 20여 명 면담과 교사 처우 개선 방안 공개 등의 조치가 취해지면서 점차 잦아들었다. 정부와 국회의 신속한 대응 저변에는 교직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사태 초기인 7월 27일 교사 약 3만 3천 명을 대상으로 한 ‘교권침해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선생님은 감정노동자다’라고 인식하는 정도를 물었는데, 매우 동의하거나 동의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99%에 달했다. 66.1%가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주요 대상을 학부모라고 답했다. 학생이라고 응답한 교사가 25.3%였고, 교장이나 교감이라고 응답한 교사는 2.9%였다. 교사들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가 생활지도(46.5%), 민원 처리(32.3%), 아동학대 신고 두려움(14.6%)이라고 응답했다. 행정업무나 감사라고 응답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응답 교사의 83.1%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학생과의 관계 설정, 학부모와의 관계 설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 발표가 있기 사흘 전인 7월 24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교사들과 간담회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급격하게 추락했으며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고,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이 곤란하고 학생 간 사소한 다툼 해결도 나서기 어려워지는 등 교사의 적극적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됐다”고 말한 걸로 보도됐다. 교사들의 이런 일상적 어려움은 과연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생겨난 이후일까?

한국의 교권 실추를 보도한 외신들은 교권 실추의 현상으로 학생들을 꾸짖는 것이 감정적 학대로 신고 당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명문대 입시를 위한 초경쟁 교육 상황과 학생들 사이의 괴롭힘과 폭력의 심각성,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 등을 문제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입시경쟁이나 자살률 문제는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는 없겠으나 학교 폭력과 관련한 분쟁의 증가는 학부모 민원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우리나라 학교는 체벌과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초중고교 재학 시절 교사에게 본인이나 급우가, 아니면 학급 전체가 손바닥이나 몽둥이로 직접 맞았거나, 맞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잘못을 해서 맞기도 했지만, 학교 시험에서 틀린 문제 개수만큼 맞는 일도 있었다. 누구는 그 체벌이 약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사랑의 매로 받아들였지만, 어떤 이에게는 모멸과 모욕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실제 교사의 체벌은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이루어지기도 했다. 학생들도 주먹다짐을 했고 걸핏하면 싸웠다. 규율부, 선도부 선배가 후배들의 복장과 두발 등 용모를 점검하며 질서 유지를 하기도 했다. “쟤가 일진”이라는 말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 최근 한류 바람을 타고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라는 K-드라마는 폭력이 지배하는 한국의 학교 모습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제 교사의 체벌은 사라졌지만, 학생 간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폭력을 사법적 절차를 도입해 처리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겨 입시에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억제하고 있을 뿐 학교 폭력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오히려 학교 폭력의 사법화와 입시 불이익 조치로 학부모 민원과 소송이 크게 증가했다. 교사의 체벌이 사라진 것도 실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010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는 ‘오장풍’ 교사가 있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50대 초반 교사가 휘두른 손바닥에 한 번 맞으면 학생들이 쓰러졌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당시 한 학부모단체가 그 교사의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 ‘오장풍’ 교사 사건이 학교 체벌 금지를 법제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체벌은 우리나라가 1991년 유엔에 가입한 직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며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하라고 1996년, 2003년, 2011년 연속으로 권고했을 정도였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이자 권리의 주체로 천명하고 있다. 아동은 폭력을 당하거나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며, 아동에 관한 결정은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규정하는 아동은 만 18세 미만인 모든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학교와 가정에서 체벌을 법적으로 용인하는 나라였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 제76조는 “각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할 때에는 학생에게 징계 또는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고, 학교에서는 교육상 필요한 훈육의 수단으로 체벌을 널리 사용했다. 1958년 제정된 민법도 제915조에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징계권을 규정해 부모가 자녀의 훈육 수단으로 체벌하는 걸 용인했다.

우리나라에서 체벌 금지가 공론화된 것은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교육법을 폐지하고 교육기본법을 중심으로 교육법체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학교에서의 체벌 금지는 법제화되지 못했다. 1998년 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7항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고 교육상 불가피한 체벌을 허용했다. 교육당국은 체벌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이 지속되자 교육적 체벌의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기도 했다. 가령, 초중학생은 지름 1㎝ 내외, 길이 50㎝ 내외의 직선형 나무로 1회 5번까지, 고등학생은 지름 1.5㎝ 내외, 길이 60㎝ 내외의 직선형 나무로 1회 10번까지, 남학생은 둔부, 여학생은 허벅지에 한해서 제3자가 배석한 상태에서 다른 학생이 없는 장소에서 체벌할 수 있다는 예시안을 만들기도 했다. 학교 체벌을 완전히 금지하게 된 것은 휴대전화 보급으로 ‘오장풍’ 교사 등 전국 각지에서 교사가 체벌하는 동영상이 연이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8일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제31조 8항에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체벌을 완전히 금지했다. 2021년 1월 8일에는 이른바 ‘정인이 사건’ 이후 가정 내 체벌에 대한 공론화로 민법 제915조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아동의 체벌을 법적으로 완전히 금지하는 나라이다.

 

4.

학교 체벌이 금지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학교 교육의 당사자 간 관계를 어떻게 재편하고 그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아직 분명한 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학생 간 폭력이 심각하다. 학부모들은 내 자녀가 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아니 가해자가 될 수도 있어 불안하다. 교사에게 반항하고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학생도 있다. 또 학생이 본분에 어긋난 행위를 하거나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도 적절하게 그 행위를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고 토로하는 교사도 많다. 이런 문제는 1990년대 말부터 이른바 ‘교실 붕괴’라는 말로 회자되어 왔다. 여기에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자녀에게 불이익이 있으면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일까지 생기면서 교사들이 스스로를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 감정노동자라고 인식하는 데까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이초등학교 사태가 촉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3년 7월 21일 대구에서는 지역 학부모 700여명이 함께 도출한 ‘대구 학부모 선언문’ 발표가 있었다. 다소 길지만 선언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대구의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이 학력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힘,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 등을 갖춘 전인적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와 함께 지원하고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학부모의 성장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1. 우리 학부모들은, 모든 아이의 성장을 내 아이의 성장으로 인식하고 학교 교육을 믿고 지지하겠습니다.

2. 우리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교육하겠습니다.

3. 우리 학부모들은, 내 아이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항상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겠습니다.

4. 우리 학부모들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 방침, 선생님의 수업과 생활교육 방향을 이해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존중의 언어로 소통하겠습니다.

5. 우리 학부모들은, 내 아이를 아는 만큼 선생님도 충분히 내 아이에 대해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6. 우리 학부모들은, 학부모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다양한 교육봉사활동에 함께하며 학교 교육을 지원하겠습니다.

7. 우리 학부모들은,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기보다는 평소에도 선생님들께 칭찬과 감사의 전화하기나 문자 보내기를 실천하겠습니다.

8. 우리 학부모들은, 민원을 제기하기보다는 문의 전화를 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은 다음 학교와 함께 해결책을 찾겠습니다.

9. 우리 학부모들은, 평소 아이 앞에서는 학교와 선생님을 비난하는 말과 태도를 삼가겠습니다.

10. 우리 학부모들은, 내 아이와 또래들의 사소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바로 개입하기보다는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겠습니다.

 

우리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육청, 학부모는 하나된 교육공동체라는 생각으로 대한민국 교육 수도 ‘대구교육’에 신뢰와 믿음의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선언문은 자녀 교육의 일차적 책임자로 학부모가 가져야 하는 원칙적 마음가짐과 다짐을 담고 있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이 교사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는 문제 의식도 선언문에는 짙게 배어 있다. 새로운 학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학부모가 달라져야 한다며, 구체적인 행동의 지침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선언문은 새로운 학교 문화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학부모와 학교 및 교사 사이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선행해야 하는 내용도 선명하게 담고 있다.

첫째, 선언문의 4번 항목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 방침, 선생님의 수업과 생활교육의 방향을 이해하고, 의견이 다를 때 존중의 언어로 소통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문구 그대로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 방침, 선생님의 수업과 생활교육의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먼저 해야 할 일이 많다. 나와 아내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만 따져서 13년차 학부모이다. 둘 다 교육학 전공 학위를 소지하고 있지만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 방침, 선생님의 수업과 생활교육의 방향은 늘 어림짐작했을 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안내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중3인 둘째 아이 편에 학교에서 학교의 여러 교육 방침, 특히 아이들 간의 분쟁이나 폭력의 예방과 발생시 처분 절차 등을 담은 제본 자료를 보내주셨다. 그 제본 자료는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생산한 여러 문서를 조잡하게 복사해서 편집한 것이었다. 이 문서 저 문서를 넣다보니 내용의 중복도 많았고 활자와 여백도 페이지 마다 제각각이라 살펴보는 중에도 좀 짜증이 났었다. 그래도 이런 정보를 처음으로 받아본 터라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기왕이면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설명하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지만 그런 요청을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둘째, 선언문의 5번 항목은 선생님도 충분히 내 아이에 대해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젠 대학생이 된 큰 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다. 등원 첫날 어린이집에서는 알림장을 만들어 아이 가방에 넣어 보냈다. 알림장에는 길지 않은 문장으로 그날 아이가 어떻게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냈는지 적혀 있었다. 집에서는 알아낼 길이 없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오는 날도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충분히 내 아이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는 집에서는 편식하고 잘 먹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내용을 집에서 알림장에 적어 어린이집으로 보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집에서 잘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며 어린이집에서는 너무 잘 먹는다는 답을 적어 보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런 소통이 뚝 끊어졌다. 학교로 찾아가 상담하는 시간이 생겼지만 선생님의 눈으로 바라본 내 아이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사실 부모는 자녀의 학교 생활을 잘 모른다. 아이에게 혹은 주변에서 건너건너 듣는 학교 생활 이야기는 왜곡되기도 쉽다. 부모보다 교사가 아이에 대해서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부모는 교사가 바라보는 자녀의 상태를 더 많이 직접 전달받기를 원한다. 어린이집 알림장을 초등학교에서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 교육적 소통은 계속 되기를 기대한다.

셋째, 선언문 6번 항목의 학부모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교육봉사활동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이 현실화되려면 우리 사회의 문화와 관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학부모 교육이 정말 필요한 학부모가 그 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이 학부모 교육을 제공하는 방법을 더 다양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평생교육체제와 연계 협력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학부모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학부모의 흥미와 필요에 기초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생업에 바쁜 학부모들이 학부모 교육이나 교육봉사에 적극 참여할 수 있으려면 유급 휴가와 같은 적절한 제도적, 문화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육아휴직도 눈치를 봐야 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현 상황의 개선 없이 이 다짐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선언문 7번과 8번에 담긴 칭찬과 감사의 전화하기, 문자 보내기, 민원 제기에 앞선 문의 전화하기는 교사와 학부모 간의 상시 소통 채널을 전제하고 있다.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개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면, 학부모에게 공유하는 업무 전화 혹은 문자 소통 방법이 필요하다. 이 전화나 문자 응대 가능 시간을 어떻게 설정할지도 숙고의 대상이다. 학부모와 교사가 상시 소통한다면 학부모가 아이 앞에서 교사를 비난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선언문 9번 항목이다.

 

 

 

5.

교사와 학부모의 시선이 엇갈려 있는 게 지금 현실이라면, 학부모의 시선과 교사의 시선이 서로 마주 보고, 같은 곳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두 시선이 결코 다른 시선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18세 미만 아동의 체벌을 금지했던 국제법적 근거 중 하나인 유엔아동인권협약의 제29조는 교육의 목적을 다음 다섯 가지로 천명하고 있다.

 

1. 아동의 인격, 재능, 그리고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

2. 인권과 기본적 자유, 유엔헌장에 규정된 원칙에 대한 존중 의식 계발

3. 아동의 부모와 아동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언어 및 가치, 현 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서로 다른 문명의 차이에 대한 존중 의식 계발

4. 아동이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 및 선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해 자유사회에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5.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 의식 계발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 역시 이 다섯 가지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학부모의 시선도 교사의 시선도 이 목적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명한 사실을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자꾸 반복해서 되뇌일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혹시라도 학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목적이,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목적이 이 다섯 가지와 무관하다면 마땅히 서로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학부모의 시선과 교사의 시선이 결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아니면 반대로 같은 곳을 바라본 적이 없다는 걸) 우리 사회 어느 누구보다 교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교사는 지금 학부모이거나, 얼마 전까지 학부모였거나, 곧 학부모가 될 사람이다. 그래서 학부모는 교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어도, 스스로가 학부모인 교사는 학부모의 입장과 처지, 그 시선을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에서는 예비교사에게 학부모를 이해하고, 학부모와 소통하고, 학부모의 시선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것을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많은 초임교사가 아무 준비 없이 학부모를 상대하다가 쉽게 소진된다. 교사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이 학부모라고 하지만, 막상 교사들은 학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자녀가 성장하면서 학부모는 어떻게 변하는지, MZ세대 학부모는 이전 세대 학부모와 어떻게 다른지 등 학부모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다. 어떤 교사는 자신이 학부모가 된 뒤에 학생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예비교사들이 지식 차원에서라도 학부모를 이해하고, 학부모와 소통하는 역량을 키우고, 학부모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 뒤에 교직에 진출하게 된다면, 스스로가 더 좋은 학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많은 교사들로부터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을 자기 자녀와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숨기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우리가 조성해야 하는 새로운 학교 문화, 교육 문화에서는 교사인 학부모가 주변의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학부모인 교사를 친구로, 이웃으로 둔 학부모들에게 학부모 역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항상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 주면 좋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지금은 엇갈려 있는 학부모와 교사의 시선이 서로 마주 보며 같은 곳을 향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애써 주신 저자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특히 황성희 박사님은 학회 출판위원장으로 책의 기획과 진행 실무를 도맡아 해주셨다. 김은정 교수님은 학회 학술위원장으로 책에 실린 원고들을 발표한 세 차례 학술대회의 조직과 운영을 맡아 주셨다. 이종철 박사님도 출판위원으로 학술대회 발표자 섭외와 책의 편집 과정에 큰 도움을 큰 주셨다. 출판 시장 사정이 매우 어려운데도 이 책의 출간을 선뜻 맡아주신 박영스토리의 노현 대표님과 실무를 맡아 애써주신 이선경 부장님께 감사드린다.

 

 

2024년 6월 여름의 입구에서

강대중 서울대 교수

제5대 한국학부모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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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성희 외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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